[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잎이 나오기 전에 먼저 꽃잎이 경쟁을 벌이는 4월의 꽃잔치가 이제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나무들은 형형색색으로 화장했던 꽃잎들을 아래로 던져버리고 이젠 푸른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짐짓 시치미 떼며 서 있다. 이제는 꽃보다도 파릇파릇 생명의 고동과 숨결을 느껴야 하는 때라고 나무들이 말하는 듯하다.
오월이 아름다운 건
연초록 바람 때문이다.
남풍을 향해 서 있기만 해도
선뜻 꽃향기를 물어 오고
상큼한 강 내음을 한껏 쓸어온다.
어찌 그뿐이랴.
눈부시게 살랑대는
나뭇잎 사랑 이야기는
해 저물어 실컷 들어도 좋다.
바람소리 듬뿍 담아 곱게 핀
들장미 붉은 향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날
오월의 바람은 최고의 선물이다.
... 이남일, 오월의 바람
그래 5월인 것이야.
그냥 밖에서 푸른 하늘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에 향긋한 내음이 실려 오는 달, 운이 좋아서 4월 뒤에 줄을 서고는, 4월이 지키지 못한 많은 약속을 공짜로 이루어 받는 달, 호사스러운 꽃의 장막을 걷고 신선한 녹음이 시야를 물들이는 이 계절에 나는 문득 지나간 봄의 꽃잔치에서 묵묵히 뒷짐을 지고 뒷줄에 있던 꽃들을 생각해본다.
그것은 늘 다니는 북한산 둘레길의 바로 길옆이 아니라 잡목들이 눈을 가리는 저만큼 떨어진 비탈길에 서 있던 백목련이었다. 방향이 틀어져서 길가는 우리가 보지 못하던 각도로 등을 지고 서 있던 노란 개나리도 있었다. 바위틈을 뚫고 올라온 진달래도 멀리서 보인다. 더 멀리는 화려한 색의 앵두꽃, 산벚꽃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는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서 쳐다봐주지 않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왜 그런 뒷 줄의 꽃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올봄에는 그네들로 해서 이 봄이 풍성해졌음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길가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찔레꽃이 피어있는 것을 본 다음이다.
오월의 숲길을 거닐다
한 무더기 꽃을 보았네
멀리서 보니 아카시아 같고
가까이서 보니 들장미 같네
순백한 냄새에 취해 코를 댔더니
슬프도록 하얀 꽃송이가 툭 떨어지네
찔레꽃 그늘에 앉아 숨어 울던
옛 누이의 눈물처럼
... 이재봉/ 찔레꽃
찔레꽃이 말해주는 누이의 눈물이
조금 전엔 뒷줄의 꽃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길옆에서 서로 알아달라고 온갖 교태를 부리던 꽃들과 달리
묵묵히 봄을 더해준 뒷줄의 꽃나무들이 있었던 것이다.
앞줄의 화려한 잔치를 위해 뒷줄에서 백 코러스를 넣어준
그 꽃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봄이 덜 외로웠단다.
아 어느새 앞줄의 꽃들이 다 떨어진 지금
앞에 한 줄만 있었으면 이 봄은
얼마나 더 슬펐을까 얼마나 한심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장미는~~
사람들이 꺾어가서 꽃병에
꽂아두고 혼자서 바라보다
시들면 쓰레기통에 버려
지는데~~
아름답지 않은 들꽃이 많이
모여서 장관을 이루면~~
사람들은
감탄하면서도 꺾어가지 않고
다 함께 바라보면서
함께 관광 명소로 즐깁니다
우리들 인생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뽐내거나
내가 가진 것 좀 있다고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좀 배웠다고~~
너무 잘난 척하거나
권력있고 힘 있다고 마구
날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장미꽃처럼 꺾여지고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배신당하고 버려지지만~~
내가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못난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손해 본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바보 인 듯~~
내가 남보다 조금 약한 듯하면~~
나를 사랑해주고 찾아주고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 이해인 수녀, 들꽃이 장미보다 아름다운 이유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라고
아파트 단지건 길가건 화려하고 요란하게
인공으로 심고 가꾼 연산홍, 자철쭉, 백철쭉 등이 요란한 지금
살짝 기억 뒤로 물러가는 초봄의 그 조역들,
가꾸지 않았으면서도 자연의 멋 그대로 봄의 의미를 일깨워주던 뒷줄의 그 꽃과 나무들은
우리에게 1등만이 아닌 2등과 3등, 아니
모든 등수가 의미 없는 공존의 세상을 일깨워주지 않았던가?
삶이란 것은 사람도 자연도
나만 잘난 척하는 것을 넘어서서
때로는 남을 위해서 뒤로 들어가서
다소곳이 서 있는 것으로 해서
모두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길가보다 더 뒤쪽, 쓸쓸할 것 같은 그곳에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있음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빈터에는 잡풀 틈에서
들꽃도 자란다
기대어 서로 위로하며
서로서로 웃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 송정숙 빈터
꽃의 달 4월이 지나고 잎의 달 5월이다.
5월은 생명이다. 5월에는 절망이나 체념이 없다.
5월의 이 싱그러움을 있게 해준 4월을 기억하고
그런 과정에서 앞줄이 아닌 뒷줄의 역할을 묵묵히 맡아준
꽃과 나무들을 기억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