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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건자, 새벽 4시에는 검정고시 학원으로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7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건자의 주전공 분야인 산타령은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며,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 산타령>을 순서대로 연창한다. 독창적인 창법으로 높고 시원한 소리, 발림, 흥겨운 장단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소리다.

 

이건자 명창과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속에 묻고 살아 온 이야기 한 토막을 다음과 같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슴 깊은 곳에 남모르는 아픔을 묻고 살아왔습니다. 소리공부를 하면서 또는 외부 출연이나 발표회를 앞두고, 이러저러한 일들에 관여하면서 이력서를 쓸 일이 종종 생기는 거예요.

 

그때마다 그 ‘학력란’을 메우는 일이 저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제때 못 배운 것도 서러워서 감추고 싶은 일인데, 그것을 세상에 공개해서 부끄러움을 내보이자니 여간 싫은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가끔은 이를 가리기 위해 거짓으로 <고졸>이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면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거짓은 양심을 속이는 것이어서 정말 쓰기 싫었어요. 뒤돌아서서 스스로 생각해 봐도 수치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공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소리 배우는 것도 싫었고, 또한 여기저기 나서기도 괴로웠으며, 심지어 삶 자체가 싫어서 숨어 지내고만 싶었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그래서 끝인가? 아니다. 그 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공부를 시작해 보자. 남들이 다 졸업했다고 하는 고등학교를 나도 졸업해 보자’라는 독한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일 가까운 신설동에 있는 모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였지요. 아무도 몰래 새벽 4시에 수업을 들으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렵고 힘들었지마는 밤에는 남몰래 배운 공부를 복습하느라 소리 배우던 발걸음도 잠시 쉬고, 우선은 검정고시 공부에 매진하였지요.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이 도왔는지, 운 좋게 그러나 정말 힘들게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도전, 합격했습니다.”

 

 

사실, 이건자 뿐만이 아니다. 국악계 주위에는 공부의 때를 놓친 소리꾼들이나 연주자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제 이건자는 무엇보다도 그 무서웠던 학력란을 당당히 <고졸>이라고 채울 수 있게 되어 많이 울었다고 한다. 못 배운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그동안의 고생이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공부가 한이 되었던 그는 그 무렵, 아예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을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고 했다.

 

학원에 다니느라 한동안 쉬었던 선소리산타령 공부도 다시 시작하였고, 보존회 공연이나 기타 산타령 관련 행사에도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2000년도부터 해마다 여름, 글쓴이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중국 <연변예술대학>과의 학술 및 실연교류회가 연변에서 열렸다. 이 교류회는 약 1주일 동안 대학 내에서 진행되는 행사였지만, 중국의 이웃 도시도 방문하게 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또한 지역 내의 예술단이나 가무단의 공연도 관람하는 등, 의미가 있는 교류회로 참가자가 해마다 약 40명이 넘었다.

 

 

어느 해인가 선소리 산타령패 10여 명 가운데 이건자 명창도 참가한 적이 있었다. 여행 중 자연스레 주위의 몇 회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리였는데, 이건자가 자랑스레 “교수님, 저 얼마 전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라는 것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늦은 나이에 대입 검정이라니? 그녀의 학구열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제 대학에 도전해 보라”라고 강하게 조언했다. 주위에 앉아있던 대학교수들도 이구동성으로 대학진학을 권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는 지방의 00대학에 진학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고, 그 여세를 몰아 00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졸업연주회를 앞두고 그가 남긴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깡촌에 살며 국민학교도 이틀 걸러 한번 통학한 것이 학력 전부였습니다. 못 배운 설움이 너무도 컸습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못 나왔음에도 거짓으로 고졸이라고 이력서에 적었던 부끄러움과 설움이 나를 석박사 통합과정에 이르게 하였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박사과정 <수료>라는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더 노력할 것입니다.”

 

이건자 명창은 2012년 성북구에 선소리산타령 지부를 설립하여 대중을 상대로 강습과 강의, 공연 등을 통해 국악보급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학업에 전념하고 있으니 그의 끝없는 도전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