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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남미 에콰도르, 자연의 권리 헌법에 명기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7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구성원을 무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따르면 무생물이라는 질료(형식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으로 되는 재료)에 나서 자라고 번식의 능력을 갖춘 것이 식물이다. 식물의 속성에 추가로 운동과 감각의 능력을 갖춘 것이 동물이고, 동물의 속성에 이성을 추가로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식물이나 동물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로 보는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의 자존심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며 서양 철학의 원조 격인 플라톤을 거치고, 신약성서의 서간문들을 쓴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에 흡수되었다. 유태교에서 비롯된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강과 산은 물론, 다른 동물과 식물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은 오랫동안 서양인의 자연관을 지배했다.

 

현대의 환경위기가 기독교의 잘못된 자연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매우 도전적인 견해가 미국의 역사학자인 화이트(L. White) 교수에 의해 1967년 Science 지에 발표되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본래 유럽 사람들은 물활론(세상 만물은 본디 생명이나 영혼ㆍ마음이 있다고 믿는 주장)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인간을 자연 일부로 보았다.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물활론이 쇠퇴하고 인간은 자연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기독교 성경인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의 의미는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하며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관은 서양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데는 공헌하였지만, 오늘날의 환경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기독교계에 충격을 주었으며 반론이 제기되었다. 신학자 듀보(R. Dubos)는 1969년에 생태적인 위기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반론을 폈다. 창세기 2장 15절에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의 의미는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가꾸고 보호하라는 사명을 준 것으로서 이른바 청지기 정신이 기독교의 자연관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비기독교 국가에서도 삼림파괴와 환경오염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이며 환경오염의 주범은 기독교 교리가 아니고 인구폭발, 자본주의, 빈부격차 등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물이 동등한 값어치를 가진다는 생각은 20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이미 13세기에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는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의 피조물로서 동등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보았다.

 

프란시스코는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형제’나 ‘자매’라고 불렀으며 새들에게도 설교하였다. 프란시스코가 지은 <태양의 찬가>를 보면, 태양과 불, 바람 등을 ‘형님’으로, 달과 별들, 물, 땅 등을 ‘누님’으로 부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차별하지 않은 성 프란시스코를 가톨릭교회는 1980년에 ‘생태학의 성인’으로 선언했다. 현재의 교황 프란시스코는 2015년에 ‘찬미 받으소서’라는 생태 회칙을 발표하여 가톨릭 교인들이 지구생태계를 보호하고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였다.

 

자연물이 인간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제 갈등 상황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까? 지난 2003년 경부고속전철 건설공사 당시에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을 했던 지율 스님은 천성산 늪에 사는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서 터널 공사를 반대하고 소송까지 내었다. 이 소송에서 지율 스님은 ‘도롱뇽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터널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원고 도롱뇽)을 제기했다. 도롱뇽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법적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울산지방법원은 2004년 4월 “현행 민사소송법상 자연물인 도롱뇽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으며 환경단체도 가처분 신청을 할 사법적 권리가 없다“라고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

 

 

미국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문명 사상가인 토마스 베리(1914~2009)는 2001년에 지구 법학(Earth Jurisprudence)을 제안하였다. 지구 법학은 현재의 법체계가 산업문명이 초래한 전대미문의 생태위기를 막지 못했고 도리어 위기를 심화ㆍ확산하는 데 공헌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법적인 권리 주체의 측면에서 인간만을 인정하는 현재의 법체계를 넘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계로 범주를 넓혀서 법의 틀을 새로이 구성해보자는 주장이 지구법학이다. 매우 진보적이며 혁신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도발적인 사상이다.

 

지구법학은 지난 20년 동안 조금씩 영토를 넓혀 왔다. 남미의 작은 나라 에콰도르가 2008년에 자연의 권리를 헌법의 독립된 장에 명기했고, 뉴질랜드 의회가 2019년에 북섬 황거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는 2009년에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 입학하여 2012년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공부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2015년에 생명문화포럼을 만들어 학술 활동과 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강금실 씨는 2020년에 《지구를 위한 법학》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지구법학이 무엇인지 또 각 나라의 법과 정치체계와 국제사회에서 지구법학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토마스 베리의 지구법학 이론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우리 시대가 지나친 화석 연료 사용으로 기후 위기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게 베리가 말한 ‘위대한 과업’이죠. 그의 글을 보며 세상 문제에 대해 근본적 접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에 이런 큰 이야기를 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상가는 드물어요. 1970년대부터 시작한 기후 위기가 인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실존의 문제라는 것을 베리는 일찍 간파했죠. 그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법이나 정치 변화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했어요. 인간의 민주주의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면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에서 바이오크라시(생명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죠.”

 

이어서 그녀는 인간 중심 법학이 지구 법학으로 가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라고 말했다.

 

“지구법학은 인간의 민주주의와 법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는 관점이죠. 근대 헌법이나 민법을 보면 국민공동체만 있어요. 지구법학은 지구공동체를 보죠. 유엔을 국가연합이라고 하는데 지구법학은 지구생명체 종의 연합으로 가자는 겁니다. 지구공동체의 논리적 귀결은 지구법학입니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이 핵심요소인 지금의 인간법학은 탁월한 법체계이지만 지구 위기를 막지 못했잖아요. 그렇다면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정치체계로 가야죠. 그게 바로 지구법학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헌법을 수정하여 강과 산, 숲 등등 자연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날이 올까? 그러한 날이 오려면 깨어있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환경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국회로 보내야 한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만을 바라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들의 자녀와 손자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때 환경위기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