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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벼슬에 나아가는 것과 물러섬은 어떻게?

한국국학진흥원, ‘선비들의 출처, 나아감과 물러남’ 주제의 정기기획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진행되었다. 민선 7기의 시도지사 및 시군구청장과 광역ㆍ기초단체 의회의 의원들의 후임자 그리고 연임자를 뽑는 선거로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서 활동하는 공직자를 뽑는 선거였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조선시대 선인들이 남긴 일기를 살펴보면서 조선 관리들의 청렴하고 올바른 모습과 더불어 부패하고 탐욕스러웠던 행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을 수 있도록 이상적인 공직자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고자 한다.

 

권력을 이용한 군수의 간통사건

 

조재호(趙載浩)의 《영영일기(嶺營日記)》를 보면 1751년 7월 9일, 흥해 군수(興海郡守) 이우평(李字平)이 서원석(徐元石)의 아내인 양민(良民) 잉질랑(芿叱娘)을 환곡(換穀)의 책임으로 잡아들였다가 용모에 반하여,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남몰래 간통하고 그 일을 덮기 위해서 죄를 만들어 덮어씌우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와 관련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자 경상감사 조재호는 서원석 부부와 연루된 개개의 사람들을 모두 잡아와 친히 조사하고 심문하니 이우평이 겁을 주어 잉질랑을 간통한 사정이 평문(平問, 형구를 쓰지 않고 죄인을 신문하던 일)에도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

 

유부녀를 겁주어 간통한 일은 자체로 처벌의 법률이 있어 사람에 있어서도 용서받기 어렵거늘, 흥해군수 이우평은 자신이 관직의 우두머리에 있으면서 고을 백성의 아내를 위협하여 간통하였으니, 그 한 짓을 논함에 참으로 추하고도 부도덕하기에, 이같이 간악하고 음탕하며 불법을 저지른 사람에게 결코 잠시도 군수의 직책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조재호 감사는 흥해군수 이우평을 직권으로 파직시키고 그에 대한 연유를 임금께 장계로 올린다. 또한 가을이라 사무가 바쁘니 후임자를 뽑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굶주린 백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초간일기(草澗日記)》를 통해 백성을 생각하며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사례도 볼 수 있다. 1590년 1월 6일, 굶주린 백성들이 늘어가자 권문해는 굶주린 마을 사람들을 도울 방도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결국 직접 백성들을 찾아다니며 곡식을 나누어 구휼하기 시작했다.

 

대구 달성지역의 하빈(河濱)의 동면, 북면, 서면의 각 마을로 향하여 굶주린 사람에게 물품을 나누어 주어 구휼하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구휼은 밤이 깊어가도록 이어졌다. 권문해는 밤이 깊어지자 관아로 돌아오지 못하고 윤효언(尹孝彦)의 집을 찾았다. 다음날도 구휼은 계속되었다.

 

하빈현의 동면과 북면 서면에 이어 남면의 구휼이 시작되었다. 남면의 사람들도 굶주린 이들이 마을의 정자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부터 시작한 분진은 낮 1시 되어서 끝이 났다. 이어 신서촌(身西村) 성당리(聖堂里)로 향하였다. 1월 6일부터 시작된 구휼은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1월 9일, 마지막으로 임암현(立岩縣), 내역리(內驛里), 검정리(檢丁里), 해안현(解顔縣)의 동촌리, 상향리, 서부리의 마을까지 모두 구휼하였다.

 

사흘간 계속되는 구휼이지만 여전히 굶주린 백성들이 이어졌다. 권문해는 한 달이 지난 2월 2일에도 읍내의 마을을 순회하며 백성들에게 쌀과 소금, 간장을 나누어 주었다.

 

한결같은 마음을 편액에 걸다

 

공직자의 출처진퇴(出處進退)를 보여 준 류승현(柳升鉉)의 용와(慵窩) 편액을 보면, 류승현은 관직에 있으면서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함으로 정무에 임하여 당대 사람들로부터 ‘공평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류승현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영남 지역까지 반란군의 세력이 뻗쳐 올 때 안동부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피폐해진 고을과 병들고 지쳐있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며 공정을 바로 세웠다. 고향에 집을 짓고 ‘용와’라고 이름 지은 것은 은퇴 이후 게으른 본성을 기르며, 학문의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선비들의 출처, 나아감과 물러남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전통시대 선비들이 출처의 언저리에서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살펴볼 수 있게 ‘선비들의 출처, 나아감과 물러남’이란 주제로 정기기획전을 준비했다. 「성학십도」, 《퇴계선생문집》, 《율곡전서》, 《남명집》, 《기언》, 「사직상소」 등을 전시하는 이번 정기기획전은 2022년 6월 21일(화) ~ 2023년 2월 26일(일)까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Ⅰ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출처진퇴’를 고민했던 유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올해 선출된 많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