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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명안공주에게 한글편지로 사랑을 준 현종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7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새집에 가서 잠이나 잘 잤느냐. 병풍을 보내니 몸조리 잘하고 밥에 나물을 넣어 먹어라. 섭섭 무료하기 가이없어 하노라.” 이는 현종임금이 사랑하는 고명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입니다. 조선시대는 대부분 공식 문자 생활이 한문으로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런 만큼 당시에는 언문(한글)이 푸대접받았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궁궐 안 대비, 중전을 비롯한 내명부는 물론 임금까지 언문을 썼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많습니다.

 

 

특히 현종에게는 외아들 숙종과 명선ㆍ명혜ㆍ명안의 세 공주가 있었는데 명선ㆍ명혜 공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비슷한 이름으로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와 다름)는 유달리 명안공주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즉위 직후부터 예론 논쟁에 휩싸여 34살의 나이로 승하할 때까지 재위 15년 동안 정쟁으로 보내야 했던 현종은 시름 속의 나날 속에서도 명안공주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이에 한글편지로 자신의 사랑을 담아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몹시 슬프고 애통스러워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예장(禮葬) 이외에 비단과 쌀ㆍ무명 등의 물건을 숙정공주의 예대로 시급하게 마련하여 실어 보내고, 갖가지 상사(喪事)에 쓰는 것을 각사(各司)의 관원들이 몸소 친히 바쳐 미진하게 되는 폐단이 없게 하라.” 이는 숙종실록 13년(1687) 기록으로 오라버니 숙종은 명안공주가 23살의 나이로 죽자 소복차림으로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슬퍼하였지요. 이들 가족 곧, 명안공주의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 오라버니 숙종과 주고받은 한글편지 그리고 각종 어필첩과 판본을 모은 유묵첩 등 유물 45점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