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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박준영, 유상호를 이은관에게 소개하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8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배뱅이굿>은 서도(西道)지방의 대표적인 재담(才談)소리극이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서도창법으로 소리하고, 대사(臺詞)와 춤, 연기 등을 곁들여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형태의 연희물이기 때문이다. 이은관이 세상을 뒤 이 분야가 침체해가는 상황에서 인천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상호 명창이 배뱅이굿 발표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유상호는 어린 시절부터 <꼬마 소리꾼>으로 알려졌던 재주꾼으로 감성이 풍부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른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소리판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꼬마 소리꾼 유상호는 단골손님처럼 불려 다니며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춤을 추며 신나게 소리를 해서 동네 어른들이 앞다투어 용돈을 쥐여줬다고 하는데, 칭찬과 함께 용돈까지 받게 되니 그 재미에 소리를 즐겁게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소리꾼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

 

아버지의 소리 실력은 전문 소리꾼의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도, 명창들의 소리를 좋아해서 그들의 음반을 들으며, 따라 부르는 것이 생활화되어 보통 수준은 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은관의 소리를 좋아해서 그의 <배뱅이굿> 음반을 틀어 놓고, 감상과 함께 따라 부르기를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이처럼 명창의 판을 수시로 들으며 그 소리를 따라 배운다는 사실은 소리를 좋아하는 애호가 차원을 넘어서 전문가 수준에 가깝게 근접해 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뿐만 아니다. 그의 아버지가 고전 소리들을 너무도 즐겨 들은 탓에,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 온 어린 유상호는 집 안에서 놀면서, 또는 집을 나서고,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듣고 있던 소리들, 특히 <배뱅이굿>을 비롯한 경서도 소리들을 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열려있는 소리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를 기억할 수 있었고, 따라 부를 수 있었으며 생활 속에서 익혀진 것이다. 명창 이은관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준 유성기를 통해 음반을 들으며 명창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유상호의 경우와 비슷하다. 하기야 당시에는 배울 곳도, 가르치는 곳도 없었기 때문에 음반을 듣는 것이 곧 소리꾼이 되기 위한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은관이 박춘재의 소리를 통해 <경복궁 타령>과 같은 민요를 먼저 익힌 것처럼, 유상호도, 아버지가 즐겨 듣던 소리를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익히게 된 것이다.

 

따라 부르는 연습이 거듭되어 습관이 되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그는 완전해지는 유일한 방법으로 거듭된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듭된 연습이 곧 습관이다. 습관 이외에 더 잘 부를 방법이 있을까? 습관이란 참으로 정상으로 가는 가장 정확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유상호가 <배뱅이굿> 소리를 처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음반을 듣게 되었거나, 그 소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틀어놓은 음반을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듣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 가사들을 기억하게 되었고, 그 위에 얹힌 가락이나 장단, 그리고 감정까지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경험한 사실들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예를 우리는 여러 번에 걸쳐서 보아오지 않았던가! 유상호의 어린 시절, 생활 속에서 자주 음반을 듣고 친숙해졌다는 말은, 그가 장차 소리꾼으로서의 가능성을 예고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한다.

 

20대 후반, 청년 유상호는 이은관의 큰 제자인 박준영 명창에게 경서도 소리를 다듬고 있었다. 유상호의 소리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간파한 박준영은 그의 장래를 위해 큰 스승 밑에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그를 이은관 명창에게 보내기로 한다. 유상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박준영 선생을 따라 서울 종로 3가 단성사 옆의 <백궁> 다방에서 이은관 선생을 처음 뵙게 되었어요. 어릴 적 아버님이 즐겨듣던 음반의 주인공, 이은관 선생을 뵙게 되어 반가웠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의 전수생으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부터 2000년경까지 약 8년 동안 선생을 가까이 모시면서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배뱅이굿 소리를 집중적으로 학습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배뱅이굿 공연이 많아서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며 자동차 안에서 소리의 어려운 부분을 별도로 학습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2000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이수하게 되었고, 2002년도에는 제주에서 열렸던 전국 민요경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서도소리 중에서 <배뱅이굿>을 주로 불렀으나, 김광숙이나 박준영 명창에게 경서도 소리 전반을 배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이은관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가령, 제가 어느 대목의 소리가 매끄럽지 못해, 선생께 이 대목의 가락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여쭈어보면 선생님은 대뜸 시범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하는 거란다’라고 일러주시고는 ‘잘 안 되지? 그럼~ 너 편한 대로 해라’ 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