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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부여 궁남지에 활짝 핀 연꽃세상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부여는 백제의 도읍지였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는 고조선의 한 부족이었던 부여족으로,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고주몽)의 아들이었으나 동명성왕의 큰아들인 유리왕에게 왕위가 계승됨에 따라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 내려와 한강이 흐르는 지금의 서울 풍납동, 몽촌동 주변에 터를 잡고 경기 충청 전라지역을 다스리면서 나라 밖으로도 그 영역을 넓혀 일본과 중국 동부해안 지방을 경영하였다.

 

그런데 훗날 고구려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21대 개로왕 대에 이르러 고구려 장수왕에 패하여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옮긴 도읍은  금강이 흐르는 요새지인 공주였다. 공주는 곰나루가 있는 도읍이라는 뜻으로, 한문으로는 웅진(熊津)으로 썼다. 이때가 서기 475년이었다. 

 

충남 공주는 방어하기에는 좋은 곳이었으나, 산세로 둘러쌓인 지형상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도읍터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성왕 때에 이르러 다시 도읍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이 부여다. 부여는 공주에서 멀지 않은 곳이면서 평야지대와 가깝고, 방어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부여는 금강이 흐르는 곳이며,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도 가까운  교통의 요지다.  성왕은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나라의 이름도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꾸어 자신의 조상이 부여족임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때가 서기 538년이었다. 이후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패망할 때까지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로 번창하였다.

 

부여로 도읍을 옮긴 뒤 백제는 발달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중국 북위(북조), 양(남조) 왜(일본)와 교역을 통하여 그 세력을 넓히며 자주성을 키웠으나, 신라와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 부여로 도읍을 옮긴 성왕은 화려하게 꽃피우던 백제의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일본에 전하여 일본문화의 기초를 세울 수 있게 하였다. 당시 일본은 성덕태자가 실권자로 있던 때로,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의 전각들이 세워지게 되었고, 절의 가람배치와 전각의 양식은 백제의 건축양식 그대로 전해졌다. 이때 지어진 절이 일본 나라지방의 비조사(飛鳥寺)다. 

 

이렇게 마지막 백제의 왕도였던 부여는 660년 패망한 뒤 철저히 파괴되어 국가의 도읍으로서 자취가  완전히 사라져 갔고, 궁궐이나 큰 절이 있던 곳도 농토가 되었다. 궁궐 전각 건물의 돌로된 기단과 주춧돌들은 땅속에 파묻히거나 나뒹굴다 민가의 주춧돌이나 담장의 막돌로 쓰여지게 되었다. 부여는 백제의 옛 도읍지로서의 풍모를 찾을 길이 없게 되어 이름만 남았다가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하여 이곳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궁의 연못임을 알게 되어 오늘의 궁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궁남지(宮南池)라 는 이름은 백제 왕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궁남지 조성은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길(금강)을 끌어들여 채우고,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산을 상징하는 신선사상을 표현하였다. 따라서 기록상으로는 이곳이 한민족 으뜸 인공정원이 된 것이다. 이후 백제는 조경기술자인 '노자공'을 일본에 파견하여 백제의 조경기법을 전해주었다.

 

부여 궁남지는 해마다 7월이면 백제 '무왕(당시에는 마동)'과 신라 '선화공주(진평왕의 딸이면서 선덕여왕의 동생)'의 설화를 바탕으로 서동연꽃축제가  열린다. 지금은 넓은 궁남지 주변에 다양한 연꽃들을 심어서 아름다운 연꽃세상으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연꽃공원이 되었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부여에 대한 궁금증은 크지만, 아직까지도 발굴을 통한 도읍의 전체 윤곽을 알 수 없어 궁금하기만 하다. 부여 읍내, 백제의 자취는 궁남지 근처에는 정림사터와 정림사오층석탑, 벽제 군수리절터, 부소산성와 관북리 유적, 백마강 건너편에는 백제 왕흥사터 등이 있지만, 궁궐의 유적은 아직도 미궁이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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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