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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창단 30주년 맞은 부평 연희집단, <잔치마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8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유상호 명창의 <배뱅이굿> 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부르는 소리는 김관준-김종조-이인수-이은관-유상호로 이어져 온 전통적인 서도(西道)의 재담(才談)소리라는 점, 서도소리는 그 지방의 고유한 언어와 소리조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유상호는 어린 시절부터 서도 소리꾼들의 음반을 들으며 자라났고, 이은관의 이수자로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얘기했다.

 

특히 최근에는 ‘인천아라리’의 앨범 제작, 「인천아리랑의 연구」와 관련하여, 실연자로 활동하였으며 어린이 국악교육에 관심이 많고, 또한 인천 근해의 ‘갯가소리’라든가 또는 도서지방의 노래 등을 지역 문화로 정착시키는 작업에 일조해 왔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지난 7월 2일, <잔치마당>은 “광대의 삶 & 예인의 길”이라는 주제로 창단 30돌 기념잔치를 하였다.

 

 

부평 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열린 행사에는 약 700여 명의 애호가와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서광일 단장은 자리를 함께해 준 참석자들을 향해 환영한다는 인사와 감격에 찬 기념사를 하여 객석의 큰 손뼉을 받았다. 그 내용을 옮겨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서 단장은 1992년, 인천 부평에 <잔치마당>을 창단하면서 마치 농부가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생활한복을 입고 장구를 메고, 강습하러 가면 무속인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북을 들고 가는 날에는 데모꾼으로 여겨 시선을 받았다고 회고하면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전통예술의 공연과 교육을 통해 국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하여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고 했다. 그의 말을 직접 옮겨 본다.

 

“창단 5년이 되던 1997년의 일이었습니다. 전국 최초로 ‘부평풍물대축제’를 발굴하고, 기획, 연출하면서 부평이라는 도시가 공업, 산업도시에서 풍물(風物)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축제의 하나로 성장했지만, 당시 부평에서 풍물 축제가 열리게 될 것을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풍물은 농업을 위주로 하는 호남의 평야나 영남의 들, 또는 경기 남부지방의 농업과 관계가 깊다는 점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평지역처럼 공장이 많고, 산업이 중심인 지역에서 전국적인 풍물대축제가 열리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당시의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회고담은 계속된다.

 

“창단 12년이 되던 2004년의 일입니다. 어렵게, 매우 힘들게 국악전용 극장인 <잔치마당>을 개관하였습니다. 이 극장은 지역 국악인들에게는 개인 발표회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고, 국악계의 각 단체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공연 마당을 제공해 주어 점차 국악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생을 전통예술인으로 살아오신 명인, 명창들을 초대하여 광대(廣大)의 길에서 예인(藝人)의 혼(魂)을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소통의 마당인 공간의 필요성은 국악인이던, 서양음악인이던 간에 절대적이다. 100년도 넘는 1908년, <원각사(圓覺社)>라는 근대식 개념의 극장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열게 되었다.

 

한국 첫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에서는 창극(唱劇)이 주가 되고, 잡가(雜歌)와 잡희(雜戱)도 공연해 온 상설극장이었다. 다시 말해 원각사 시절 이전에는 혼자 부르던 판소리를 원각사 무대에서는 여러 명이 배역을 맡아 부르는 형식의 분창(分唱)이나 입체창, 그리고 창극의 형식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극장의 수는 셀 수도 없이 세워졌으나, 아직도 그 수요는 예술인들에겐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특히 봄 가을철이면 청중과 소통하기 위한 예술인들이 무대를 구하지 못해 공연의 기회를 연기할 정도로 부족한 실정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잔치마당에서는 20여 년 전, 그 필요성을 깨닫고 극장을 개관하여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나섰다니 앞을 내다보는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대단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단장 서광일 대표의 회고담은 점차 더 정점으로 이어져 가고 있었다.

 

“2010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 인증은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단원들의 안정적 생활기반을 제공받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러한 토대에서 단원들은 수준 높은 창작품을 제작하여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으로 순회공연을 다니며 전통예술의 유통과 상품화로 자생(自生)의 기초를 마련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