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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와 간도 사진으로 보는 《동주의 시절》 나와

간도사진관 시리즈(Ⅰ) 《동주의 시절》, 사진 류은규, 글 도다이쿠코 , 도서출판 토향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산골작이 오막사리 나즌굴뚝엔

몽긔몽긔 웨인내굴 대낮에솟나

 

감자를 굽는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눈이 뫃여앉아서

입술이 꺼머케 숱을바르고

넷 이야기 한커리에 감자하아식

 

산골작이 오막사리 나즌굴뚝엔

살낭살낭 솟아나네 감자굼는내         

         

                               - 윤동주 ‘굴뚝’ 1936년 가을-

 

이는 윤동주(1917-1945) 시인이 만 19살 때 쓴 시로 산골짜기 오막살이에서 친구들과 감자를 구워 먹는 모습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굴뚝>을 비롯하여 <고향집>, <오줌싸게 지도>, <애기의 새벽>, <이런날>, <무얼 먹구 사나>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윤동주 시인의 시 스무 편과 간도 지역의 당시 사진 200여 장을 곁들인 책 《동주의 시절》(간도사진관 시리즈 1권, 도서출판 토향)이 출간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신간 《동주의 시절》에 소개되고 있는 사진은 류은규 사진작가가, 글은 도다 이쿠코 작가가 쓴 것으로 어제(29일), 이 작가들을 만나러 인천관동갤러리를 찾았다. 류은규, 도다 이쿠코 씨는 부부 작가로 이들은 1993년부터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살면서 조선족 출신의 항일운동가 후손들을 취재하는 한편 역사적인 자료사진과 개인 소유의 사진 등을 수집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동북 삼성을 돌아다니며 5만 여장의 사진을 확보했다.

 

 

이번에 간도사진관 시리즈 1권으로 펴낸 《동주의 시절》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재중동포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5만 여장에 이르는 사진들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의 첫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어떻게 《동주의 시절》 이라는 책을 기획하게 되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도다 이쿠코 작가는 후쿠오카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마나기 미키코(馬男木美喜子) 씨 이야기부터 꺼냈다.

 

“후쿠오카에는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이 있습니다. 이 모임은 1995년 2월, 후쿠오카시에서 열린 윤동주 50주기를 추모하는 한일 합동위령제를 계기로 탄생했으니까 올해로 27년째지요. 원래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이 모여서 윤동주 시를 읽고 서로의 감상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코로나19로 2021년부터 비대면(온라인)모임을 하게 되는 바람에 한국에 있는 저도 참석이 가능해졌습니다.”

 

 

도다 이쿠코 작가는 도쿄에서 윤동주 연구의 독보적인 존재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씨의 권유로 참가하게 되었다. 도다 이쿠코 작가가 2021년 9월, 처음으로 이 모임에 온라인으로 참석하였을 때 회원들은 마침 윤동주 시인의 ‘이런날’ 이라는 시를 공부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이좋은 正門의 두 돌긔둥 끝에서 / 五色旗와 太陽旗가 춤을 추는날 / 금(線)을 끟은 地域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 아이들에게 하로의 乾燥한 學課로/ 해ㅅ말간 倦怠가 기뜰고 / 「矛盾」두자를 理解치 몯하도록 / 머리가 單純하엿구나 / 이런날에는 / 잃어버린 頑固하던 兄을 부르고싶다.

                                                                               - 윤동주 ‘이런날’ 1936. 6.10.-

 

도다 이쿠코 작가는 회원들이 시를 읽어 가던 중 “오색기(五色旗)와 태양기(太陽旗)가 춤을 추는 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간도에서 수집한 사진’을 온라인으로 보여주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 윤동주가 살던 간도 지역의 수많은 사진은 일본인들의 윤동주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백 마디 설명보다 한 장의 사진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컸다. 후쿠오카 윤동주 시 모임을 통해 류은규ㆍ 도다 이쿠코 부부는 《동주의 시절》을 구상했고 이 책에 넣을 사진과 시를 고르고 역사적인 사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동주의 시절》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는 나 여기 왜 왔노, 2부는 간도의 일상, 3부는 만주국의 엷은 평화, 4부는 배움의 나날, 5부는 동주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시와 관련하여 ‘간도의 조선 이민 이야기’를 비롯하여 ‘붐비는 용정 시장’, ‘황소를 데리고 온 조선 이민’, ‘간도의 항일 함성’ 등 조선인의 간도 이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진과 곁들인 구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책 《동주의 시절》에서 돋보이는 부분을 꼽으라면 ‘5부 동주생각’ 편이다.

 

‘햇빛 따스한 언니 무덤 옆에

민들레 한 그루 서 있습니다.

한 줄기엔 노란 꽃

한 줄기엔 하양 씨.

(가운데 줄임)

날아간 꽃씨는

봄이면 넓은 들에

다시 피겠지.

언니여, 그 때엔

우리도 만나겠지요.

 

                        - 윤일주 ‘민들레 피리’-

 

윤일주(1927-1985)는 윤동주의 10살 아래 동생이다. 윤일주는 <나라사랑>(외솔회) 1976년 여름호에서 동주 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줌의 재로 변한 동주 형의 유해가 돌아올 때 우리는 용정에서 2백 리 떨어진 두만강변의 한국 땅인 상삼봉역까지 마중을 갔었다. 그곳에서부터 유해는 아버지 품에서 내가 받아 모시고 긴긴 두만강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2월 말의 몹시 춥고 흐린 날, 두만강 다리는 어찌도 그리 길어 보이던지...(중략)”

 

 

“100여 년 전,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명동촌(明洞村)은 신앙과 교육을 구심점으로 한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였습니다. 그 당시 명동촌은 암흑을 비추는 한 줄기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도다 이쿠코 작가는 윤동주의 고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명동촌에서 나고 자랐던 윤동주의 간도 시절을 더듬어 보고 윤동주를 통해 그 시절 재중동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겨레의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려는 불굴의 의지를 보는 듯해 가슴이 찡했다.

 

 

신간 《동주의 시절》에 대해 사진가 류은규 씨는 말한다. “30년 동안 중국 동북 삼성을 다니며 재중동포의 삶을 촬영하는 한편 개인이 소장하던 사진 한 장이라도 놓칠세라 소중하게 수집했습니다. 특히 재중동포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사진을 태워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진가로서 이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 소실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자칫하면 흩어지고 없어지기 쉬운 인화지, 필름, 유리건판 등 5만여 장의 사진은 재중동포들의 광대한 생활사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어 도다 이쿠코 작가는 말했다. “올해는 한ㆍ중 수교 30년, 중ㆍ일 수교 50년을 기념하는 해인데, 눈앞의 현실을 볼 때 답답한 마음이 커져만 갑니다. 정치나 외교관계로 인해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있다고 둔갑하기 쉬운 세상에서, 우리 손에 진심을 담은 사진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연이 닿았던 수많은 중국 조선족 동포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던가! 사진작가 남편과 글솜씨가 뛰어난 작가 도다 이쿠코 씨가 지은 책 《동주의 시절》 속에는 이들이 쏟은 간도 지역의 재중동포들의 삶이 윤동주라는 시인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대담을 통해 동주와 재중동포의 삶은 결국 둘일 수 없는 온전한 하나임을 새삼 확인해보는 시간이었다.

 

이 가을! 《동주의 시절》 책을 통해 동주가 살던 공간과 시간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이 책에 실린 윤동주 시는 육필원고가 게재된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詩稿)전집》(민음사)의 표기를 따라서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 현재 쓰는 한국어와 맞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시인이 쓰던 간도의 말투를 상기할 수 있도록 원시(原詩)의 표현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간도사진관 시리즈(Ⅰ) 《동주의 시절》, 사진 류은규, 글 도다이쿠코 , 도서출판 토향

 

【저자 소개】

 

<류은규>

서울 출신의 사진작가. 1981년부터 지리산 청학동을, 1993년부터 중국 하얼빈에서 조선족 인물사진을 촬영하면서 오래된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부임한 뒤 대련, 하얼빈, 남경 등 중국 각지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조선족 관련 사진 촬영과 수집을 계속해왔다.

사진집으로 《잊혀진 흔적-독립운동가의 후손들》(1998년 포토하우스), 《잊혀진 흔적Ⅱ- 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2000년 APC KOREA), 《연변문화대혁명》(2010년 도서출판 토향), 《청학-존재하는 꿈》(2007년 WOW Image), 《100년의 기억-춘천교도소》(2010년 도서출판 토향) 등이 있다.

 

<도다 이쿠코>

일본 아이치현 출신의 작가ㆍ번역가ㆍ편집자. 1983년부터 서울에서 한국어연수, 한국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일본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해왔다. 1989년 하얼빈 흑룡강대학교에서 중국어 연수를 받고, 연변대학교를 찾아가 조선족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중국조선족을 살다-구 만주의 기억》(2011년 이와나미岩波서점), 《한 이불속의 두 나라》(1995년 도서출판 길벗), 《80년 전 수학여행》(2019년 도서출판 토향), 일역서로 김훈 작가의 《흑산》(2020년 쿠언) 등, 일본과 한국에서 15권의 저서와 17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10년째 한국 베스트셀러에 관한 칼럼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