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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갈등 없음, 조선시대 양반가 풍경에 해답

한국국학진흥원, 유연하고 합리적인 한가위 모습을 기록한 일기 공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명절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우리 겨레의 큰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에서는 조선시대의 한가위 풍경을 담은 일기를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는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이었던 한가위 모습을 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산소에서 지내는 한가위 차례, 차례와 성묘의 이중 부담 해소

 

경북 예천의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초간일기(草澗日記)》(1582년 (음)8월 15일)에는 “용문(龍門)에 있는 선조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소에 올라갔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안동 예안에 살았던 조성당 김택룡(金澤龍, 1547~1627) 역시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1617년 (음)8월 15일자)에서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누이의 아들 정득, 조카 김형, 손자 괴를 데리고 가동(檟洞)의 선산에 올라 선영에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라고 하였고, 그 전해에도 “가동의 선조 무덤에 제사를 지내므로 직접 그곳으로 갔다”라고 적어놓았다.

 

 

이를 통해 한가위 차례를 가족과 친척이 산소에 모여 지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주의 청대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은 《청대일기(淸臺日記)》(1745년 (음)8월 15일자)에서 “시냇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 산소에 성묘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문 뒤에 손자 복인과 아우 상기가 술과 포를 조촐하게 갖추어 성묘하고 돌아왔다”라고 하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간소한 제물로 성묘를 지낸 모습을 보여준다.

 

친가ㆍ외가ㆍ처가의 구분 없는 차례문화, 함께하는 한가위

 

김택룡의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1616년 (음)8월 15일자)에는 “가동에서 합제(合祭, 여러 사람에게 함께 제사를 지냄)를 지냈는데, 영해(寧海)의 외조부모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다음 해 한가위에는 산소에 가기에 앞서 집에서 외조부모의 제사를 지냈고, 선조의 무덤에서 차례를 지낸 뒤에는 “제물을 나누어 영해의 장인 에게도 절을 올렸다”라고 기록하였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金坽, 1577~1641)은 《계암일기(溪巖日記》(1621년 8월 15일자)에서 “먼저 외가의 한가위 차례를 지낸 뒤, 집의 사당에서 한가위 차례를 올렸다”라고 하였다. 한가위 차례에 참석하는 친족의 범위도 지금과는 달랐다. 대구의 모당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은 《모당일기(慕堂日記)》(1601년 (음)8월 15일자)에서 “오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덤에서 돌아왔다. 동생 희로가 두 사위를 데리고 와서 참석하였다”라고 하였고, 김택룡은 1617년 성묘에 생질이 함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같이하는 한가위 준비, 모두가 행복한 명절 지내기

 

김택룡 일가는 한가위 준비도 함께했다. “조카 김형을 시켜 수록동(水錄洞)에 있는 할아버지의 무덤을 벌초하고 음식을 올리도록 했다”(1616년), “누이의 아들 정득의 무리가 수록동에서 벌초했다”(1617년)와 같이 친가와 외가의 후손이 번갈아 산소의 벌초와 차례를 맡았다. 또 음식 마련도 서로 도왔다. “가동의 제사에 범금과 임인이 술을 가지고 와 올렸다”(1616년), “포태(泡太, 두부를 만드는 데 쓰는 콩)를 보냈다. 내일 누님이 가동의 선조 무덤에 가려 하시기 때문이다”(1617년 (음)8월 13일자)라는 기록은 형편껏 역할을 분담해 서로 도와가며 한가위를 지낸 모습을 담고 있다.

 

한가위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명절로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조선후기 가례의 보급과 확산으로 양반 가문에 사당이 건립되고, 제례의 순서와 제사상 음식의 조리법과 배치까지 정례화되었다. 여기에 신분제 동요와 재산상속 문제와 맞물려 더욱 보수화된 제례 문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는 명절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한가위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한가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