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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미국 샌디에이고서 풍물 씨앗 뿌리는 박호중 교장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9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의 나라 밖 공연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상모에 모터가 달려 있는지 궁금해하는 아프리카 연주팀의 이야기와 우리의 장고가락을 흉내 내는 외국의 타악기 연주자 이야기, 그리고 기악의 경우에는 악기 편성이 음악의 성격을 판가름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이번 주에는 미국의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의 풍물을 전파하고 있는 열성 교포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는 어느 날, 미국의 박호중 씨로부터 도움 요청이 담긴 다음의 문자를 받게 된다.

 

“저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풍물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탓에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이 점을 한국 <잔치마당>의 인력으로 보완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하는 내용이었다.

 

“낯선 문자를 받기는 했으나 내심 뿌듯했습니다. 머나먼 바다 건너, 그것도 우리의 정서와는 완전히 상반된 서구문화권에 사는 분이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풍물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차마 감동을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초청을 받은 <잔치마당> 서광일 단장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매사 인정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경비 문제, 단원 각자의 개인적인 생활문제, 국내 공연계획, 등등의 문제들이 앞을 막고 있기에 단원들과 여러 차례 회의하고 또 했다고 한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풍물을 세계로 널리 떨칠 좋은 기회라는 점에 합의하고, 지원사업을 신청한 뒤에, 샌디에이고로 출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도착 이후, 정식 공연장이 아닌, 한인교회 안에서 풍물놀이를 진행했으며 전통혼례 의식을 재현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보다 폭넓은 문화를 알리는 데 신경을 썼다. 비록 조촐한 무대였지만, 그래도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지향하고 지키고자 한다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했기에 공연을 하면서 참으로 뿌듯했던 것이다.

 

그 뒤, 서 단장은 “샌디에이고 현지에서 곧 퍼레이드 축제를 하게 되는데, 한국의 <잔치마당>이 풍물로 참여할 수 없겠느냐?” 하는 내용의 요청을 받게 된다. “드럼, 트럼펫 등 서양악기들로만 구성된 퍼레이드에 난데없이 들어선 한국의 꽹과리, 북, 장고, 징, 소고, 태평소를 갖춘 풍물팀이 등장한다는 상상은 참으로 신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잔치마당> 구성원들은 흔쾌히 박 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참여를 결정하였고, 3달 동안, 한인들을 대상으로 풍물교육에 힘썼으며 샌디에이고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펼쳐왔던 공연들은 대부분 우리 문화의 부활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에 견줘 미국에서의 공연은 그 문화가 세계 저변에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에 더욱더 감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참고로 한국의 풍물패가 미국 땅에서 공연을 펼친 예는 70년대 초, 미국 LA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안 퍼레이드>, 곧 ‘한국의 날’ 행사가 아닐까 한다. 당시 퍼레이드의 사회를 맡은 빌 로마스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했다.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 고유미를 두드러지게 발휘한 풍물패들의 행진이었으며 이 풍물패들을 미국 내의 다른 축제 행사에도 출연시키고 싶다.”, “풍물패의 특유한 춤과 음악도 인상적이지만, 모자에 달린 긴 줄로 그리는 원의 광경은(12발 상모) 누구나 ‘감탄할 묘기’라면서 풍물패를 만들고, 이를 연습시켜 지휘한 Don Kim(김동석 전 UCLA 교수)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 이 행사를 이끌던 김동석 전 UCLA 교수가 전한 말이다.

 

“제1회 <한국의 날> 행사가 열린 시기는 1974년 가을이었어요. 지금의 Korea Town(한국 마을), 곧 LA 올림픽거리를 중심으로 Vermont(벌먼)길에서 Western(웨스턴)길까지의 거리를 약 2시간에 걸쳐 행진하는 의식행사였지요. 당시 풍물패 구성을 잘해서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아야 하므로 무척이나 긴장도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우선 교포 남학생들 10여 명을 모아, 그들에게 북과 장고치는 법을 설명한 뒤, 간단한 가락들을 가르첬지요. 그런데 마침 중학생이던 리틀엔젤스 출신 허지선 양이 이민을 온 거예요. 지선양은 풍물패 놀음에 능숙했기 때문에 악기며 춤은 물론, 그 어렵다고 하는 상모도 능숙하게 잘 돌릴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직접 꽹과리를 치면서 진두지휘를 하여 그런대로 모양새를 꾸며 미주 이민 사상, 최초로 올림픽 거리에 풍물소리를 내면서 2시간가량 행진을 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원더풀’을 외치며 박수를 보내주었고 구경 나온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호해 주었으며, 나이 드신 교포들은 너무도 감격적이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다시 박 교장이 살고 있는 샌디에이고에서 퍼레이드 축제가 열리게 되었고, 잔치마당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풍물놀이에 대한 사명감이 대단하여 스스로 비용으로 풍물학교를 세우고, 이를 손수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감동이 느껴졌다. 동참하게 된 서 단장의 회고담이다.

 

 

“그는 평소 고국도 자주 방문하여 잔치마당의 공연도 관람하고 풍물에 대해 계속해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4달의 짧은 교육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온 우리 또한, 한국풍물학교에 대한 관심을 잊지 못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도 풍물을 중심으로 교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의 신념과 마찬가지로 풍물로써 우리나라의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며 사랑하고 널리 퍼뜨리고자 한다는 점, 작은 결심과 소담한 신념으로부터 시작된 이 한인 풍물학교는 저에게도 많은 생각들을 남겨 주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인풍물학교를 더욱 사랑하게 된 배경은 저와 동질성을 가진 이들이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세계 곳곳에 더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며, 그들과 제가 한마음이 되어 우리의 풍물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동시에 더 발전시킬 기회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