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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시각을 알려주는 ‘자격루’ 발명

장영실,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으뜸 발명왕 -②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01]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의 관직을 주라

 

“행사직(行司直)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ㆍ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장영실은 이미 태종 때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궁중기술자로 종사하였다. 제련(製鍊)ㆍ축성(築城)ㆍ농기구ㆍ무기 등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 3년)에 윤사웅ㆍ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고 이후 세종의 총애를 받아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가 되면서 관노의 신분을 벗었고 궁정기술자로 활약하게 된다. 상의원은 임금의 의복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이후에도 장영실이 자격루 제작에 성공하자 세종은 공로를 치하하고자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의 관직을 내려주었다. 이때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황희가 “김인이라는 자가 평양의 관노였으나 날래고 용맹하여 태종께서 호군을 특별히 제수하신 적이 있으니, 유독 장영실만 안 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자 세종은 장영실에게 호군이라는 관직을 내렸다. (《세종실록》15/9/16)

 

 

세종과 협치 :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

 

조선 세종 때 으뜸 장인(匠人, 과학자)으로 기억되는 장영실(蔣英實)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인물이다.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보다 뛰어나서, 매일 강무(講武)할 때는 나의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실록》15/ 9/16)

 

세종은 장영실에 대해 나의 곁에서 심부름한 친분이 공이 아니라 그의 기술을 높이 사고 있다.

 

 

저절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

 

기계 시계가 없었던 옛날에는 햇빛이 던져주는 해그림자를 통해 하루의 시간을 알았고, 밤에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쟀다. 그러나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그러한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물시계다. 물을 넣은 항아리 한 귀에 작은 구멍을 뚫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다른 항아리가 받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부피는 일정하게 늘어나는 그 물의 깊이를 자로 재서 12등분 하면 한 시간의 길이가 나오게 된다.

 

물시계는 중국에서 기원전 7세기에 발명되었다고 전하며 누각(漏刻), 또는 경루(更漏)라고 불렀다. 그러나 매일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항상 사람을 시켜서 시간을 재어야 했다. 이에 사람이 일일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은 결국 중국 송나라의 과학자 소송(蘇訟)이 1091년경에 물레바퀴로 돌아가는 거대한 자동 물시계를 발명했다.

 

 

그러나 그 장치들이 너무나 복잡하여 소송이 죽은 뒤에는 아무도 만들지 못해 사라졌고, 12~13세기 아라비아 사람들이 쇠로 만든 공이 굴러떨어지면서 종과 북을 쳐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를 만들었다.

 

이후 장영실은 당시 세종과 정인지, 정초 등이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문헌에 전하는 소송의 물시계와 이슬람 물시계를 비교하면서 ‘자격루’라는 새로운 자동 물시계를 만들어냈다.

 

자격루의 제작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장영실은 또 하나의 특징적인 자동 물시계 제작에 착수했다.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를 결합한 천문기구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자격루와 혼천의,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절기에 따른 해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절기에 농촌에서 해야 할 일을 백성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절기와 시간에 맞추어 백성이 할 일을 알리는 이른바 민본(民本)/위민(爲民) 정치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자격루가 완성된 지 4년 뒤, 세종 20년(1438))에 장영실은 또 하나의 자동 물시계인 옥루(玉漏)를 완성하였고, 세종은 경복궁 침전 곁에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그 안에 설치하도록 했다.

 

 

부서진 세종의 안여

 

세종 24년(1442) 장영실은 임금이 탈 안여(安輿)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아마도 설계나 감독을 했을 것이다. 장영실의 ‘안여’는 실록뿐만 아니라 다른 문헌 기록에서도 그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장영실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어가일 것이다

 

(참고 : 조선시대 임금이 타는 가마는 용도에 따라 달랐다. ‘가(駕)’는 임금이 궐 밖 먼 길을 갈 때 타는 가마로 말이 끌게 되어 있고, 사람이 메기도 했다, ‘연(輦)’은 왕이 주로 궐내나 근거리에서 타는 가마이고, ‘여(輿)’는 사람이 메는 가마이다. ‘안여’라면 여의 종류인데 보통 여는 대여(大輿) 혹은 소여(小輿)라 하여 바퀴 없이 사람이 드는 가마를 말한다.

 

바퀴 없는 ‘여’가 부서지는 일은 거의 없다. 바퀴가 없는 기존의 ‘여’와 달리 안여는 수레바퀴가 달린 어가였을 가능성이 크다. 바퀴를 달아 편안하게 이동하려는 목적에서 편안할 ‘안(安)’자를 붙인 ‘안여’라는 이름의 어가가 탄생했다. 이는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세종 24년 3월 3일 세종은 강무와 온천욕을 위해 강원도 이천(伊川, 강원도 서북부 지역)온정(溫井:온천) 행궁으로 출발했다. 장영실이 만든 안여는 세종의 강원도 행차 날에 맞춰 제작되었고 처음 사용되었다. 세종은 이틀 뒤인 3월 5일 강원도 철원에 도착했다.

 

세종의 큰 총애를 받았던 그가 갑자기 행적이 묘연해진 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안여가 부서진 사건 때문이다. 이에 장영실을 의금부에서 국문하도록 하였다는 기록만 있다. 이로 장영실이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설상가상으로 3월 14일에 이천군 일대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세종은 모든 일정을 거두고 이천 행궁을 향해 어가를 재촉하였다. 대군들과 강무를 하며 이동하던 세종이 이천 행궁에 도착한 날이 3월 16일 안여가 부서진 일이 벌어졌다.

 

안여가 부서질 때 세종이 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바퀴가 달린 안여 외에도 세종이 대가(大駕)도 탔기 때문이다.

 

장영실은 불경죄인가? 어쨌든 왕이 타는 안여가 부서졌으니 처벌은 당연한 일이다. 장영실은 의금부에서 국문을 당했다. 사헌부로부터 계속해서 그를 벌주라는 탄핵이 올라오자 세종은 여러 차례 망설이다 결국 장영실을 벌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토록 아끼던 장영실에 대해 세종이 배려해 준 것이라고는 곤장 100대의 형을 80대로 감해 준 것뿐이었다. 과거 그의 실수에도 과감히 눈감아준 전례와는 차이가 있다.

 

장영실이 안여 사건으로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진 것은 석연치 않은 이야기가 많다. 이에 대해 ‘① 왕실천문대인 간의대 사업으로 명나라와의 외교 문제가 발생하자 장영실을 보호하려고 세종이 자작했다.’라는 해석과 ‘② 장영실도 나이 들고 천문의기 프로젝트가 끝나버려 이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등 여러 추측과 해석이 나온다. (참고: 《인물한국사》, 정성희, 장선환)

 

세종대 자격루를 만든 주인공으로 과학자로만 두드러진 장영실이 남긴 글은 없다. 게다가 세종 24년(1442) 종적을 감춘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조차도 알려진 바가 없다. 세종대 한 과학자의 쓸쓸한 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