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국악전용 공연장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취미 풍물반의 운영이 성공적이었으나 풍물만으로는 시민들의 욕구를 수용하기 어려워 숙고 끝에 <명인 명창전>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어서 지역의 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번 주에는 소극장에서 열린 <8도 아리랑 부르기 축제>, 곧 아마추어 소리꾼들이 전국의 아리랑을 통해 경연을 펼치는 잔치마당이다. 정선, 밀양, 진도, 등 전국의 아리랑을 3분 이내에 불러서 청중평가단과 전문평가단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소리꾼을 뽑는 방식이다.
한 시간 내내 아리랑 대회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는 아리랑에 대한 인식도 심어줄 수 있었고 그러면서 청중평가단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경연자들은 <대회>라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축제는 우리가 몰랐던 지역의 아리랑을 새롭게 듣게 됨으로써 아리랑의 새로운 발견이나 풍부한 정서를 체감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보람이 있었다.
특히, 공연하는 무대와 관객 사이 간격이 떨어져 있지 않아 공연자와의 친근감이나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연자들은 부담도 되었으나,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을 한층 더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코로나로 인해, 매주 전통예술 특성화 극장 사업이라고 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소극장 지원사업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소극장은 매주 수요일을 상설 공연일로 정하였으나 관객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숙고 끝에 온라인으로 유튜브 중계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소극장의 운영단원 모두가 절박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20년 3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 행사로 <타앤락> 콘서트를 본 소극장 단원들이 하게 되었는데, 잔치마당 유튜브로 생중계를 하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온라인을 통해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시청자 수가 300~500명. 보통 무대에서 공연하게 되면 관람객이 100여 명 안팎인데,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500여 명이 참여하여 감상하게 된 것이다.
소극장 처지에서는 새로운 관람문화로 온라인 공연이 훨씬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댓글로도 추임새가 이어지면서 오프라인 못지않게 흥겨운 공연이 가능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단장과 단원들은 신선함과 동시에 풍물의 새로운 활로가 트였다고 무척 기뻐했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의 공연이 무관중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잔치마당도 코로나 시기에 걸맞은 공연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던 것이다. 잔치마당 소극장의 서광일 단장의 말이다.
“1992년 풍물예술단체로 시작해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3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예상치 못한 변수와 위기 속에서도 떳떳하게 인천 풍물의 중심이란 자부심을 지켜내며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결코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결과가 아닙니다. 잔치마당을 중심으로 풍물이라는 하나의 뜻 아래 함께 모인 우리 단원들. 그들의 피땀 어린 노고와 뜨거운 애정이 없었다면, 아마 잔치마당은 존립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잔치마당 30돌 기념 책자를 펴내려는 의도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여러 현실적인 고난과 부족함 속에서도 풍물 하나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우리 단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미 저편으로 사라진 역사의 일면을 애정과 삶으로써 억척같이 꺼내고 보듬었던 그들과 함께 한 잔치마당의 발자취를 느껴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제일 먼저 잔치마당의 유일한 창업 공신인, 김호석 부단장을 소개한다. 그는 현재 진도북놀이 이수자이면서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전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에서는 부평구 예술인협회 국악분과 회장, 부평구 연합풍물단 강사, 동 풍물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풍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단장도 그를 초빙한 이유로는 열정이 있는 풍물꾼이며 아울러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인천지역의 ‘청소년 풍물단’을 만들어 지도해 왔고, 잔치마당이 제공하는 장학금으로 원광디지털대 전통연희과를 수학하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부평풍물축제>를 통해 동(洞) 풍물단을 이끌었고, 옹진군, 연평도, 백령도 등, 인천시로부터 떨어져 있는 지역을 순방하며 풍물을 가르치는 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다.
잔치마당의 부단장으로서 서 단장을 보좌하며 풍물 연주가 있을 때마다 상쇠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니 그의 존재가 어떠한가 짐작이 된다.
이제, 잔치마당 서 단장을 비롯한 모든 단원이 그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오직 잔치마당의 상쇠가 아닌, 김호석 개인의 예술관과 자기만의 값어치를 드러낼 기회를 마련하고, 스스로 독창적인 예술가로 변모시켜 나가기를 기대해 보는 마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30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잔치마당 안에서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