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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사장님, 보내드리기 싫습니다

위대한 영화인이셨던 이태원 사장님께 바치는 추모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7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벌써 1년이 지났군요. 사람들이 흔히 쓰는 이 말을 사장님께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1년 전 갑자기 송혜선 대표로부터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요. 그 전부터 비록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도 꼭 뵙고 손을 잡고 당부를 드리고 싶었는데 1년 반 동안 닫혀있던 중환자실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저한테 맥주 한 잔이라도 사주시라고, 그러려면 일어나시라고 간곡히 당부를 드리면, 틀림없이 들어주실 것이란 확신이 있었지만, 그 확신을 시험해볼 기회조차 없이 사장님은 먼 나라로 가셨지요.

 

하얀 국화꽃으로 장식된 단 위에서 웃고 계시는 사장님, 평소에 뵙던 밝은 웃음, 싱긋하던 입모습 그대로였는데 이제 더 뵐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리고는 발인에 참석하지 못하고 분당 어디 유명한 공원묘지에 좋은 데를 마련해서 그리로 보내신다는 소식에 그런가 보다 하고는 좋은 데 가셨겠지 하고 사장님을 그쯤에서 보내드린 것인데 어느새 일 년이란 시간이 정말로 훌쩍 지나갔군요.

 

 

그러고 일 년이란 시간이 훅 지나면서 많이 죄송했습니다. 그동안 사장님을 잊고 있었던 것 같은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연유로 지난 24일 월요일 오후에 우리가 수소문해서 모여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란 말의 뜻 아시지요? 평소에 사장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저를 포함한 영화 담당 기자들과 배우 정경순, 태흥영화사에서 사장님을 모시고 오랫동안 홍보를 맡아온 송혜선 PL 기획 대표 등 열 명이 평일인데도 시간을 내어 사장님이 계신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잘 안 보이시네요.

 

 

사장님이 계신다는 묘역을 찾아가 보니, 새로 조성한 묘역은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벽에다 기둥도 세워 서양의 신전 같은 다소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인데, 돌을 일정한 크기로 단정하게 붙여, 몇 단으로 납골벽을 만들었더군요. 거기 5층쯤 되는 사각의 돌에 사장님의 사진과 이름이 보였습니다.

 

아! 여기 누워계시는구나! 그 납골벽 앞 평지묘역에는 많은 비석과 묘소가 있어서 찾기 쉬운데, 지금 계신 곳은 금방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사진과 이름이 붙어있어 우리가 조금 힘들게 찾아내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정말로 멀리 보내드리고 잊어버렸던 사장님을 더 이상 가지 말고 오시라고 손짓해서 겨우 다시 뵙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벽에다 모신 관계로 따로 상석이 없어 길게 놓인 폭 좁은 단에 가지고 간 꽃을 올리고, 그 앞의 찬 대리석 바닥에는 전지 크기의 장지 두 장을 깔아서 임시로 돗자리를 대신하였는데 그 맨 앞에 송 대표가 만든, 액자가 놓였습니다. 액자에는 그동안 사장님이 만든 30여 편의 영화 스틸이 들어있어서 사장님이 매 영화를 만들며 쏟았던 열정의 흔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거기서 우리 추모객들은 작은 잔에 커피를 한 잔씩 올리며 평소 좋아하시던 커피 드시라며 사장님을 마음속으로 만났습니다. 왜 여기 안 계시고 그리 멀리 가셔서 우리를 섭섭하게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배우 정경순 씨는 그 앞에서 사장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멀리 가신 사장님이 너무 그립다고, 자신에게 배우의 길을 열어주시고 격려해서 이만큼이라도 성장하게 하신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며 애끓는 추도의 말을 올렸습니다. 사장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늘 홍보를 맡고 온갖 궂은일을 다 처리한 송 대표는 말도 하지 못하고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3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영화담당 기자를 하였지만, 사장님과 누구보다도 많은 인연을 쌓은 것을 기억하시지요? 벽제 촬영장에서 장군의 아들 2편을 찍을 때 현장에 처음 찾아가서 쭈뼛쭈뼛하던 때가 30년도 더 전이고요, 그 뒤에 사실 영화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사장님의 인생과 철학을 더 많이 듣고 이야기하고 영화의 방향이랄까 한국 영화의 앞날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듣고 나누고 하였습니다.

 

1993년 초 제가 북경 특파원으로 나가 있을 때 막 개봉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서편제'를 처음으로 영상 테이프로 만들어 북경으로 보내주어 우리 특파원들이 다 함께 보며 감동을 나눈 일이 있었고, 그 영화가 그 해 상하이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뉴스용 영상을 위성송출국까지 달려가느라 제가 사고가 날뻔했던 것 등등 몇 가지 추억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제 말을 경청해 주고 제 생각을 물어 영화제작의 방향을 정한 것이지요.

 

추운 겨울에 손을 불어가며 영화를 만들려고 고생하는 출연자들과 스태프 들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에정을 더욱 깊게한 때문인 듯 제가 북경에서 돌아온 1996년 가을에 사장님을 위해 영화인 이름으로 탄원서를 써준 기억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개인적으로 고마운 것은 임권택 감독님, 정일성 촬영감독님 등 세 분이 2004년에 감사패를 주신 것이지요. 한 달에 한 번씩 음식점을 순회하며 세 분과 같이 식사하는 영광을 받았지요, 그때야말로 한국 영화의 황금트리오가 빛나는 때였는데 그 시기의 따뜻한 추억을 함께 만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겠지요.

 

 

 

사장님!

 

1993년 문화의 날에 옥관문화훈장을, 200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등 영화제작자로서는 훈장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현대 한국영화의 큰길을 열어주신 사장님, 영화기자들은 알지요. 사람들이 영화관에 몰리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 좋은 영화는 모두 외국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좋은 영화가 없는가, 맨 날 벗고 울고 짜고 죽이고 넘어지는 영화만인가 하고 많이도 안타까와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 가운데 멋진 우리 영화를 만들고 그것들을 세계무대에 내놓아 성과를 올리고, 우리도 우리 영화가 있다고 자랑하게 한 사장님, '아제 아제 바라아제', '서편제', '태백산맥', '장군의 아들'을 기억합니다. 그런 명품 영화들이 어떻게 모두 한 제작자에게서 나왔는가 생각해보면 그 까닭은 자명합니다.

 

곧 의식이 있고 열정이 있고 돈벌이가 되지 않을 때도 영화를 버리지 않고 제작에 나서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대종상, 청룡상, 백상예술대상, 춘사예술상 등 국내영화상을 휩쓸고, 칸 영화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낭뜨 영화제 등에서 한국을 빛냄으로서 최근 헐리우드까지 석권하는 우리 영화의 기틀을 마련해주신 것, 그것은 이태원이라는 한 의식 있는 영화제작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우리 영화계에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사장님이 이루신 업적이나 헌신에 견줘 지금 누워계신 곳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는군요. 돌아가셨을 때도 영화인협회 차원에서의 장례지원이 아쉬웠고요, 지금 누워계신 곳도 잘 눈에 띄지 않는군요. 우리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주신 공적에 비례하는 추모 공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1년이란 세월이 금방 가듯이 몇 년이 또 훌쩍 지나가면 사장님의 역사를 사람들이 얼마나 기억해줄까 걱정도 해봅니다. 어쩌면 세월이 주는 망각이라는 이상한 약을 먹고 우리도 사장님을 곧 잊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우리도 사장님의 그 멋진 웃음과 호탕한 목소리와 함께 사장님이 우리 영화에 바쳤던 그 열정과 공적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전에 사장님의 일생을 우리가 다시 조명하고 그 열정을 우리 영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소중한 비료가 되도록 정리해주는 노력이 꼭 있었으면 합니다만 어떻게 될지요.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에 누워계신 저 많은 분처럼 사장님도 이제 화려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고 과거라는 무한한 어둠의 공간으로 들어가실 것이지만 저희는 그렇게 보내드리기 싫습니다. 사장님 계신 데에는 늘 한줄기 밝은 빛이 비치었으면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