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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우리 역사에 웬 낙타가?

《신기하고 조금은 슬픈 역사 속 낙타 이야기》 설흔, 스콜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낙타? 웬 낙타?’

우리 역사에 낙타라니? 낙타가 등장할 만한 일이 무에 있을까 조금 의아할 수 있지만, 맞다. 있었다. 낙타는 생각보다 우리 역사에 꽤 여러 번 등장한다. 대부분 신기하게, 그리고 조금은 슬프게 빼꼼히 얼굴을 내밀곤 했다.

 

이 책, 《신기하고 조금은 슬픈 역사 속 낙타 이야기》는 ‘낙타’라는 생경한 동물을 소재로 우리 역사를 바라본 책이다. 어린이책이지만 소재가 워낙 재미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낙타 특집’이다.

 

 

우리 역사에 처음 낙타가 ‘문제적 동물’로 떠오른 건 고려 태조 왕건 때였다.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가 고려에 친선의 뜻으로 사신 삼십 명과 낙타 쉰 마리를 보냈는데, 거란(요나라)이 옛 고구려를 이은 발해를 멸망시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왕건은 낙타를 모두 굶겨 죽였다.

 

(p.24-25)

10월에 거란에서 사신을 통해 낙타 쉰 마리를 보냈다. 왕이 말했다. “거란이 예전부터 발해와 화목하게 지내다가 문득 다른 생각을 내어 옛날의 약속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멸망시켰다. 잘못이 심하니 이웃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신 삼십 명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밑에 매어 놓아, 모두 굶어 죽게 했다. -『고려사절요』 중에서-

 

훗날 고려의 충선왕은 학자 이제현과 나눈 문답에서, 이 탓에 양국 사이가 나빠지고 결국 전쟁이 수 차례 일어났으니 잘못된 것이라 지적했다. 조선의 학자로 《성호사설》을 쓴 이익 또한 낙타를 굶겨 죽인 것이 실책이라 여겨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자신이 쓴 「해동악부」라는 시에도 낙타 이야기를 넣었다.

 

(p.26-27)

그 때문에 언덕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화를 당했다. 하마터면 나라가 망할 뻔했다. 태조 왕건이 강한 이웃 나라를 잘못 대접했기 때문이다. -『성호사설』 중에서-

 

군대는 힘을 못 쓰고 낙타가 죽고 나니, 오랑캐 기마병이 압록강을 건너왔네.

-「해동악부」 중에서-

 

과연 낙타를 굶겨 죽이지 않았다면, 요나라와 고려는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발해를 멸망시키고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요나라도 감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고려 초기의 국력은 강성했다.

 

이렇게 낙타와의 인연은 끝나는가 싶었는데, 조선 성종 때 다시 낙타가 등장한다. 성종이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낙타를 사들이라 명한 것이다. 성종은 여진족이 살던 국경 쪽에 근무했던 신하를 통해 낙타의 존재를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은 상당히 값비싼 값인 베 육십 필을 주고 낙타를 사 오게 했다, 길이 꼬불꼬불하고 산길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 낙타가 짐을 싣는 동물로 적합할 듯하고, 전쟁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나라에 없는 동물을 많은 돈을 들여 데려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는 신하들의 반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포기하지 않고 낙타를 원했던 임금이 있었으니, 그는 뜻밖에 숙종이었다. 청나라 사신이 낙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가 여위어 먼 길을 갈 수 없게 되자 버리고 갔는데, 한양 안 사람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어 구경했다. 이 소문을 들은 숙종은 궁궐 안으로 몰래 낙타를 데려왔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 곧 ‘어떤 물건을 너무 좋아해서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는 것’을 경계한 신하들의 간언으로 결국 내보내고 말았다.

 

지은이는 물건에 정신을 온통 빼앗기는 태도는 좋지 않지만, 그게 무서워 아예 문을 걸어 잠그는 것 또한 나쁘며, 조선이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진 것도 어쩌면 지나치게 ‘완물상지’를 경계한 탓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필자도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사회가 발전을 이어가는 동력은 끊임없는 호기심이다.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 적용해보고, 도전해봐야 발전이 있다. 조선은 새로운 것을 지나치게 경계했기에 신문물 수용이 느릴 수밖에 없었고, 안전한 선택만을 거듭하면서 정체된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 밖에 낙타 보기를 간절히 염원한 연암 박지원, 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 창경궁이 헐리고 그 자리에 동물이 세워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던 순종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있다. 낙타와 함께 떠나는 우리 역사 여행,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이런 참신한 구성의 역사책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