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태극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국기, 태극기도 한때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태극기는 곧 독립운동이요, 독립운동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과감히 태극기를 들었던 여성들이 있다. 자칫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용기를 냈던 이들이 있다. 이 책 《태극기를 든 소녀 1》은 그 여섯 명의 지극한 용기에 바치는 헌사다.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드높인 의병대장 윤희순.
이화학당 교사이자 목숨을 걸고 고종의 비밀문서를 파리로 가져간 김란사.
기모노 속에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온 김마리아,
3.1운동의 불씨를 고향에서 이어간 유관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려 손가락을 자른 남자현.
전투기를 몰고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이 책은 이 여섯 명의 의로운 여성들을 차례차례 되살려낸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듯 친근한 어투로 그들이 겪었을 고뇌와 삶의 고통을 풀어내, 어른도 그 아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폭력과 탄압이 난무하던 시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신력과 체력으로 그 폭압을 온전히 이겨낸 여성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p.52) 김마리아 편
서대문 형무소 5호에서
며칠째 대나무로 머리를 맞았어.
머리 속이 터진 걸까….
콧구멍으로 귓구멍으로 고름이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치다 감옥으로 끌려온 지 몇 달이 지났어.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 정신만은 말짱하니까.
오늘은 쓰러져 있는 나에게
일본 재판관이 뭐라고 했는지 아니?
“쯧쯧, 나가서 현모양처나 돼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다시 힘이 솟았어.
내가 생각하는 현모양처는
일본 놈들과 맞서 싸우는 멋진 여자였거든.
실제로 김마리아는 누군가 혼인을 주선하는 이가 있어도 “나는 대한의 독립과 혼인했다”라며 거절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광복을 이루기 한 해 전인 1944년 숨을 거둔 그녀는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던진 애국자였지만, 혹독한 고문을 수 차례 받은 나머지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등 아픈 희생이 뒤따랐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남자현 또한 독립에 대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열혈 투사였다. 만주에 파견된 일본인 대사 부토를 처단하려 거사를 도모했으나 밀정의 밀고로 붙잡힌 뒤, 여섯 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초주검이 되어 풀려났다.
p.106
감옥에서 나온 뒤, 나는 여관방에 몸져누웠어.
아들과 동지들이 나를 찾아왔지.
반가운 얼굴을 보았으니, 그래도 여한이 없구나.
얘들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게 아니야.
정신에 있단다.
올바른 정신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지.
그리고 내가 가진 248원,
이 돈을 독립 축하금으로 써 주련?
독립운동에 쓰는 게 아니라,
독립이 이루어진 날을 축하하는 돈으로 말이야.
나는 조선의 독립을 굳게 믿고 있으니까.
남자현 열사가 남긴 독립 축하금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삼일절 기념식에서 우리 정부에 전달되었다. 248원, 그 피 같은 돈은 한 사람의 인생을 태우고 남긴 흔적이었다. 모두가 독립을 믿지 못하고 변절하던 시대, 우리의 독립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독립 축하금’을 남기고 떠난 그녀의 굳은 믿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들의 열정에 저절로 마음이 뜨거워지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로 살면서 겪었을 수모와 고난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참 좁은 길을 가면서 참 많이 외로웠을 그녀들에게, 지은이의 책이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