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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옛사람이 살던 집, 그곳에 밴 향기

《옛 사람의 집》, 박광희, 가치창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사람이 살던 집. 그곳엔 특별한 정취가 어린다. 때로는 집주인의 인품이, 때로는 집주인의 인생역정이, 때로는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물씬 배는 것이 옛집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은 떠났어도, 집은 그 자리에 남아 주인의 인생을 묵묵히 보여준다.

 

박광희가 쓴 책, 《옛 사람의 집》은 대원군, 기대승, 조식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조선 최고 지식인과 권력자 11인의 삶과 영욕을 그들이 살았던 ‘집’을 통해 조명한 책이다. 다들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한 번쯤 접했을 인물이지만, 그들이 살다 간 ‘집’이 주목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특별하다. 비록 지은이가 스스로 서문에 밝혔듯 백성보다 조금 더 가지고 누렸던 사회적 지배 계층의 공간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당대 최고 지성들의 삶과 생각을 집을 통해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에 소개된 집은 하나같이 쟁쟁하다. 덕혜옹주가 살다 간 창덕궁 낙선재,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추사 김정희의 추사고택, 정약용의 여유당과 다산초당, 기대승의 애일당, 이내번의 선교장, 양산보의 소쇄원, 남명 조식의 산천재, 명재 윤증 고택, 맹사성과 맹씨행단, 정여창 일두고택 등 11곳의 집과 그곳에 살았던 주인의 삶이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집은 기대승의 애일당 고택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큰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寄大升)의 집안은 행주 기씨로, 나주평야의 한 자락인 너브실 마을에 세거지를 이루어 살고 있다. 전체 20여 가구 가운데 서너 가구를 빼고는 모두 기씨다.

 

이 마을 곳곳에 묻어나는 기대승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마을 한가운데 고봉의 학덕을 기리는 월봉서원이 있고, 오른쪽에는 대대로 후학을 가르친 서당 귀후재가 자리 잡았다. 대숲길을 돌아들면 기씨 종가 애일당이 나오는데, 사랑채에는 고봉학술원이 차려져 있다.

 

고봉의 집안은 본디 대대로 경기도 고양과 서울에서 살다가, 아우 기준이 기묘년 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당하자 아버지 기진이 세속의 일을 단념하고 전라도 광주로 옮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우가 사화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는 등 권력의 비정함을 몸소 체험한 고봉은 어릴 때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성리학에 전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입신양명하여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있었다. 그래서인지 열여섯 살 때 과거에 응시해 낙방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과거에 응시, 마침내 서른둘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고봉은 나라의 녹을 먹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신입사원이 입사 1, 3, 5년 차에 회의를 느끼며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그도 비슷했다. 막상 벼슬길에 나서보니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정치는 다르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고, 대과에 급제한 이듬해인 서른세 살에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진로에 자문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계속 거취를 고민하던 기대승은 마침내 1570년 2월, 벼슬을 내어놓고 이듬해 이른 봄 낙향했다. 마흔세 살 때였으니 벼슬길에 나선 지 열두 해 만의 일이요, 그가 죽기 두 해 전의 일이다. 고향에 내려온 고봉은 드디어 찾은 마음의 평화를 시로 표현했다.

 

(p.108)

숲속 오두막에 조용히 살아도 맑고 빛나니

처음 서재를 지어 푸른 언덕에 잠겼어라

비탈의 몇 그루 대나무 밤비에 소슬거리고

고갯마루 외로운 소나무 노을에 하늘거리네

 

‘서재를 지어 푸른 언덕에 잠겼다’니, 이 얼마나 한가롭고 멋진 풍경인가. 그러나 고향에서 평화를 누리던 시간도 잠시, 다시 1572년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어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한강나루에 나와 그를 전송하던 한 명사가 앞으로 나서며 고봉에게 물었다.

 

(p.109)

“사대부로서 사회에 몸을 세우고 처신함에 시종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고봉은 망설임 없이 “기(機), 세(勢), 사(死) 세 글자면 충분하다.”라고 답했다.

즉, 대개 군자의 출처는 마땅히 그 기미를 먼저 살펴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 그다음은 반드시 때를 알아 형세를 살펴 구차하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끝으로 죽기까지 선한 도를 지키는 것으로 기약을 삼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봉은 평생 그 세 가지 글자를 지키며 살았다. 지금 너브실 마을에 남아있는 종가 애일당에는 그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고택은 고봉의 12세손이자 우리나라의 초대 사법연수원장을 지낸 기세훈 변호사의 선친이 어머니를 위해 애초에 광주에 지었던 사랑채를 너브실 마을로 이전한 것이다.

 

 

‘애일당’은 글자 그대로 ‘오늘을 아끼고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로 괴로워하고, 미래를 알지 못해 불안해하는 현대인에게 이 얼마나 좋은 가르침인가. 우리가 진실로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이니, 오늘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가 진정한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애일당의 당호 글씨는 서예가 성당 김돈희가 썼고, 앞 툇마루 네 기둥의 주련은 글씨로 일세를 풍미했던 위창 오세창이 썼으며, 위당 정인보는 ‘애일당 기(記)’라는 편액을 써 걸었으니 당대에 애일당 주인과 교유하던 재사들의 문향(文香)이 집약되어 있다.

 

(p.112)

쉬엄쉬엄 이른 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너브실을 돌아보자니 문득 고봉의 날 선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사람은 살갗은 얇아도 마음갗은 두터워야 하느니라.”

 

고봉의 정신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애일당처럼,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 집에 살았던 옛사람이 건네는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엄동설한의 날씨에 마음갗을 두터이 하며,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학자들의 고매한 기운이 느껴지는 옛집과 함께 한 해를 보내는 마음가짐도 다듬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