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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모두를 위한 한글, 훈맹정음을 만든 박두성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 최지혜 글, 천개의 바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훈맹정음’.

척 보아도 그 뜻이 짐작이 간다. 바로 맹인을 위한 한글점자다. 눈이 보이는 이는 일상적으로 읽는 한글도 맹인에겐 큰 산이다. 점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그들에게 한글점자, ‘훈맹정음’의 존재는 세상을 밝히는 등대요, 촛불이다.

 

1926년, 이렇게 소중한 ‘훈맹정음’을 만드는 큰일을 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박두성이다. 지은이 최지혜는 박두성이 나고 자란 강화도 어느 산자락에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운영하며 그림책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을 썼다.

 

 

박두성은 강화도보다 더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섬, ‘교동도’에서 1888년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였던 박두성의 집안은 교동교회에 봉사하며 신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어릴 때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지만, 여덟 살부터는 강화도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얼마간 농사를 짓다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엔 일반 초등학교에서 보통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에 속한 맹아학교 선생님이 되어 처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였다. 앞을 못 보는 아이들에게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에 따라 일본어와 일본어 점자로 공부를 가르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의 불구가 될 텐데, 눈먼 아이들이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 이 아이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우리 점자가 필요해!”

 

한글점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인생의 사명감을 느낀 그는 여덟 사람으로 구성된 ‘조선어점자연구회’를 만들어 점자 연구에 들어갔다. 일제의 눈을 피해 밤마다 연구한 끝에 1926년, 마침내 ‘훈맹정음’이라는 한글점자를 완성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지 480년이 지난 뒤였다.

 

훈맹정음 반포는 훈민정음 반포일과 같은 11월 4일에 이루어졌다. 누구나 배우기 쉽고, 점의 개수가 적고, 글자끼리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3대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훈맹정음은 여섯 글자로 이루어진 ‘6점식 점자’로, 한글이 조합되는 원리를 그대로 따랐다.

 

그의 용기는 서슬 퍼렇던 조선총독부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박두성이 용기를 내 조선총독부에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고 편지를 썼고, 이에 조선총독부가 맹아학교에서 훈맹정음을 가르치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훈맹정음을 통해 우리의 얼과 글을 지키며 맹아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아이들이 볼 점자책을 만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해, 늘 성가시다고 구박당하니 차라리 죽고 싶다”라는 한 아이의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신약성경을 점자로 옮기기 시작해 10년이나 걸려 완성하기도 했다.

 

하루는 맹아학교를 졸업한 제자가 박두성을 찾아와 맹인을 위한 점자 잡지를 펴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자 흔쾌히 받아들여 일주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점자 잡지 《촛불》을 펴냈다. 이런 그의 열정은 은퇴 후에도 이어져, 집에 점자 도서관을 마련해두고 언제든지 눈먼 이들이 찾아와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박두성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우리 땅 곳곳 어둠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빛이 찾아왔어요.

훈맹정음을 익히고 점자책을 읽으며 조금씩 세상에 눈을 떴어요.

훈맹정음은 지금도 앞이 보이지 않아 소외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어요.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의 끝없는 인류애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동화로 풀어낸 이 책은 한글을 만든 이는 알지만, 한글점자를 만든 이는 몰랐을 많은 독자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다. 박두성을 다룬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그래도 이렇게나마 그가 기억되고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