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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우리 삶 속 말글생활, 이대로 괜찮은가?

”Gugak in 人“으로 정체성 혼란 이끄는 국립국악원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5]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스키장에 다녀오게 되었다. 겨울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강원도에 있는 스키장에 도착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 우리 가족들에게 맞는 난이도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기초부터 시작하면 초급을 찾으면 되지 않겠냐 하겠지만 어디로 가야 초급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키를 타기 위해서는 슬로프를 타고 자신에게 맞는 난이도에서 내려 스키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다른 스키장에 비해 규모가 제법 커서 스키장 안내소도 두 곳이나 있는 이곳의 난이도는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각 슬로프의 이름도 난이도와 상관없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우스는 신들의 신이니 가장 상급일 줄 알았지만, 난이도가 초급에 해당하였다. 벽에 붙은 난이도 안내지를 꼼꼼히 보지 않으면 슬로프 입구에서 확인하고 되돌아가야만 한다. 만약, 확인 못하고 슬로프를 타면 초급자가 상급자 코스까지 올라갈 판이다. 지난해, 스키 강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스키를 시작하기도 전에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올해도 같은 난이도를 연습하기 위해 스키장을 재방문하였다. 작년 우리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고, 한껏 오지랖을 부리며 도와주고 왔다. 스키를 타는 내내 난이도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하라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방송되었다. 그러나, 그 방송조차도 슬로프 이름에 따른 난이도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은, 스키장만의 일이 아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친구가 입주한다고 하여 방문하였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어서 낯설기만 한데 안내 표지판은 온통 영어로 되어 있었다. 안내 표지판 앞에서 한참 길을 찾던 내게 지나가시던 노부부께서 경로당 위치를 물으셨다. 경로당은 “senior center"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또, 어느 기사를 읽어보니 방문한 카페의 차림표 이야기를 한다. 미숫가루를 M.S.G.R로만 표기하여 논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였다. 미숫가루 이외에 앙버터는 Ang Butter, 여의도 커피는 Yeouido coffee로 표기하여 커피를 주문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였다. 젊은 층이 주로 찾는 지역의 음식점에서는 로마자로만 표기된 차림표나 간판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말하였다. (출처: 외대교지 110호, 조유나 작성)

 

이런 상황들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여행지의 숙박 예약을 하기 위해 누리집을 살펴보면 시설과 서비스의 안내, 객실안내 등이 대부분 영어로 표시되어 있다. 한글로 설명하고 영어를 보조언어로 활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닌, 영어 활자로 표기되어 있거나 영어발음 그대로 한글로 표기한다. 곧 영어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안내문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광고들의 문구는 한글과 영어가 함께 표기하기도 한다. 국립국악원에서 ”Gugak in 人“ 모집공고가 올랐다. 만 18살 이상의 전통 공연 예술가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영상제작을 위한 지원을 위한 모집공고다. 음원 녹음에서부터 프로필 촬영, 뮤직비디오 제작, 나라 안팎 홍보를 지원하겠다는 자세한 설명을 보기 전까지 제목을 보고는 무엇을 하려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젊은 국악인들은 세계화를 외치며, 한류 문화의 선도를 이끌고자 그 어느 때보다 자신들만의 색으로 전통의 문화예술을 현대적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간혹 팀의 이름에서 정체성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영어와 한글을 함께 표기하거나, 영어와 한자를 표기하고 한글로 읽게 한다거나, 영어로만 표기하기도 하는 팀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하는 것이 전통의 예술인가 의구심이 든다.

 

전통 예술의 선율과 창법을 타 예술분야의 음악적 기법에 얹혀서 하는 것이 과연 현대적 표현의 전부인가? 선율과 창법 등의 음악의 형태적 요소만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 표현의 전통예술인지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창작활동을 이어갈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음악의 비 형태적 요소는 무엇인가? 천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우리의 정신과 정서 그리고 그 안에 깃들여져 있는 대한민국만의 흥과 한이 주는 감정의 총체다.

 

그런데 팀 이름에부터,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정신적 식민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현대의 국악 장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음악의 형태적 요소를 위한 고민뿐만 아니라 비 형태적 요소까지 고민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 표현의 전통음악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이 정부의 대표음악 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먼저 고민하고 제시해도 부족한데 앞장서서 정체성 혼란을 선두 하고 있음에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 나리라“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야 우리 민족의 뿌리 또한 지킬 수 있다고 하셨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국어학자로 어렸을 적 서당에서 한문 강독법을 배우다가 한문 원문을 그대로 음독하고 우리말에 토를 붙여 무슨 뜻인지 풀어 주는 방식에서 한문과 우리말이 서로 다른 것을 인식하고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달아 국어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면서 국민을 계몽하고 나라의 독립을 도모하려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국의 모든 말을 모아 우리나라 최초의 우리말 사전 《말모이》를 1911년에 펴냈다. ”한 나라가 잘되고 못 되는 열쇠는 그 나라의 국어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있다.“라고 국어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한글을 가르치고 연구하셨다.

 

한글은 이렇게 지켜 온 우리의 언어다. 우리의 것이 세계 것이라 외치면서 정작 언어사용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언어 속에는 우리의 정신과 뿌리가 함께 깃들여져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언어에 따라 우리의 정신과 정체성도 정해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듯이 그 나라의 언어를 보면 그 정신의 뿌리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기본이 무너지면, 세계를 이끄는 선도가 아닌 정체성이 혼란해져 이 나라 저 나라의 이것저것을 섞은 혼탕 국가로 뼈아픈 무시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