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달 1월 27일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사체로 발견된 17m 길이 향유고래 뱃속에서 각종 쓰레기들이 나왔다고 미국 CBS 뉴스가 2월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BS에 따르면 길이 17m, 몸무게 60t인 이 향유고래는 부검 결과 최소 6개의 통발과 7종의 어망, 두 종류의 비닐봉지 외에도 낚싯줄, 그물망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앞서 2022년 11월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 해변에서도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14m 길이의 향유고래를 발견했다. 이 고래는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숨졌는데, 부검을 진행한 결과 뱃속에서 약 150㎏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대한 해양 동물을 죽인 것이다.
고래 뱃속에서 나온 쓰레기는 대부분 물 위에 떠 다니던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은 잘 분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은 햇빛의 자외선과 출렁이는 파도에 의해 잘게 쪼개진다. 플라스틱은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 크기가 5mm 이하로 작아지면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부른다. 특히 크기가 1mm 보다 더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을 마이크로비드(microbead)라고 부른다. 크기는 작지만 미세플라스틱과 마이크로비드도 심각한 해양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마이크로비드는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작게 쪼개져서 생기기도 하지만 현대인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제품에 원료와 섞어 일부러 투입되기도 한다. 마이크로비드는 화장품과 비누, 치약과 같은 생활용품 등에 박리제(剝離劑)로서 첨가된다. 입자의 크기가 균일하고 구형인 마이크로비드는 크림이나 로션을 바를 때에 표면을 부드럽게 하고, 잘 펴지게 한다. 화장품을 반짝이게 하는 마이크로비드도 있다.
그밖에도 종이컵, 담배꽁초, 자외선 차단제, 마스카라, 보건용 마스크, 생리대, 껌, 생수병, 콘택트 렌즈, 페인트, 인조 잔디, 타이어, 농업용 비닐 등 미세플라스틱의 발생원은 다양하다. 물에 섞인 미세플라스틱은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고 통과하여 결국에는 바다에 이르게 된다.
물속의 미세플라스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물고기가 미세플라스틱이 섞인 물을 흡수하면, 플라스틱은 소화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된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양 포유동물 267종은 플라스틱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다. 미역이나 김과 같은 해조류도 미세 플라스틱을 흡수한다. 물고기와 해조류가 흡수한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통하여 사람에게로 전달된다. 사람이 버린 플라스틱을 시간이 지나 사람이 먹는 꼴이 되었다.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의 체내에서는 물론, 지하수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2022.12.27)에 따르면 비무장지대 근처인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해안분지(일명 펀치볼)의 지하수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강원대 지질학과 이진용 교수팀은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양구 해안분지 지하수에 들어있는 미세플라스틱 농도를 분석 결과, 물 1리터당 최대 3개까지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해안분지 농지에서 비닐하우스나 비닐 멀칭에서 유래한 미세플라스틱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땅속의 지하수도 더 이상 미세플라스틱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육지의 지표수와 지하수에서는 물론 태평양의 외딴 무인도의 해변에서도 발견되었다. 이제는 지구상의 모든 하천과 강과 바다가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15년에 영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 바다에는 많게는 51조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계자연기금(WWF)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류는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5g)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90%는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지만 나머지는 몸에 축적된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체내에 쌓인 미세플라스틱은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활발하게 하며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키운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류가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미세 플라스틱의 크기가 작을수록 악영향은 더욱 심각해진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홍상희 박사는 “작아진 미세 플라스틱은 큰 플라스틱에 견줘 바닷물 내 유기 오염물질을 많이 흡착한다. 또한 플라스틱 입자가 작아지면 이들을 섭취하는 해양생물 종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간 밥상에 오른 해양생물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홍 박사는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을 오염시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인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과학적으로 더 검증돼야 한다. 논쟁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연구 실적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UN을 중심으로 미세 플라스틱의 사용을 자제하는 방침이 논의되고 있다. 2015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각국 정부에게 미세 플라스틱 규제 방안을 권고했다. 2015년 7월 미국 일리노이 주는 2017년 7월까지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고 유니레버, 러쉬, 로레알, 더바디샵, 피앤지 등 화장품 대기업들이 미세 플라스틱의 단계적 사용 억제를 선언하기도 했다. 2022년 12월 캐나다 연방정부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국내에서는 여성환경연대와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에서 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 사용 금지 법안을 촉구했다. 그 결과 2017년 7월부터 마이크로비드가 많이 사용되는 세정용 화장품과 치약 등 일부 의약외품에서 미세플라스틱 사용 및 해당 제품 수입이 전면 금지되었다. 요즘 과거처럼 알갱이가 보이는 스크럽제나 치약을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아직 기초화장품이나 색조화장품에는 여전히 미세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2019년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화 원년’으로 선포하고 ‘해양 플라스틱 저감 종합 대책’을 수립하였다. 플라스틱 오염은 어느 한 부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환경부는 2022년 12월 21일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미세플라스틱 다부처 협의체’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지금 당장 지구상 모든 나라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생산을 전면 금지한다고 해도, 이미 바닷새와 물고기의 내장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상당량 포함되어 있다. 고래는 플라스틱을 먹고 계속해서 죽어갈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경고한 바에 의하면 2050년이 되면 바다에 있는 물고기의 양(무게 기준)보다 플라스틱 양이 더 많아 질 것이라고 한다. 바다에 배출된 플라스틱은 없어지지 않고 몇 백 년 동안 먹이사슬에 따라서 순환을 계속할 것이다.
플라스틱은 탄생한 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현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하고, 플라스틱 포크로 음식을 먹고 난 뒤 플라스틱 칫솔로 이빨을 닦는다. 공장에서 만든 플라스틱이 바다에서 분해되고 먹이사슬을 통하여 사람이 플라스틱을 다시 먹게 될 줄을 예상한 과학자는 없었다. 신의 선물이라고 칭찬받던 플라스틱이 인류의 골칫거리로 변해버렸다.
김선태 시인은 2022년 11월에 발표한 《짧다》라는 제목의 시집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하였다.
쓰레기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데
쓰레기들이 모여 외쳤다
버린 자가 쓰레기라고
그 몸속으로 되돌아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