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대로 된 한옥 사진집을 발견했다.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의 사진기자였던 이동춘과 경희대 주거환경학과 교수였던 홍형옥이 합작한 사진집, 《한옥ㆍ보다ㆍ읽다》가 그 책이다. 한옥의 멋과 매력을 한껏 담은 사진은 물론이고, 사진에 담긴 한옥을 설명하는 글 또한 으뜸이다.
모르고 보면 ‘한옥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알고 보면 한옥만큼 다채롭고 개성이 살아 있는 우리 문화도 없다. 월간지 기자로 일하며 전통문화를 지키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글쓴이는 자유기고가로 독립한 뒤, ‘내 것’을 찍기 위해 고심하다가 마침내 전통문화를 화두로 삼았다.
그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의 한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월간지 시절 찍었던 한옥 사진과 자유기고가 시절 찍은 사진, 그리고 홍형옥 교수의 설명에 어울리는 한옥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 찍은 사진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공들여 찍은 사진이 많은 만큼,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사진과 자세한 해설이다. 내용이 알차면서도 편집을 공들여 한 덕분인지 잘 보이고, 잘 읽힌다. 한옥이란 어떤 집이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오늘날에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많은 한옥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책방채’이다. 사대부는 사랑채에서 독서나 글쓰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던 사랑채는 책방채로 불리기도 하고, 독서당 혹은 서재, 당호로 부르기도 했다.
봉화 충재고택에 있는 책방채는 온돌 2칸과 마루 1칸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맞배지붕 서재다. 한옥 한 채로 이루어진 서재,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 책방채는 서재와 정자가 합쳐진 형태라 더 멋스럽다.
(p.65)
충재고택은 선비의 공간인 소박한 서재와 손님을 맞이하는 정자 공간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충재가 온돌 중심의 내향적인 서재로 낮은 곳에 있다면 청암정은 마루 중심의 외향적인 정자로 높은 곳에 있으며, 충재가 맞배지붕의 단아함으로 깊이 은둔한 형상이라면 청암정은 팔작지붕의 화려함으로 선계로 비상하는 형상이고, 충재가 주인이 학문을 연구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서재였다면 청암정은 손님을 맞이하는 누정이었다.
한옥의 매력 가운데 하나인 ‘따로, 또 같이’의 미학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분합문’은 창이자 문이었고, 분리되어 있던 공간을 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방과 마루가 하나가 되고, 집안과 마당이 하나가 되어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고 막힘이 없었다. 한옥에 살면 이런 호쾌한 순환으로 절로 기상이 활달해질 것만 같다.
이렇듯 바람의 순환을 도와주는 또 다른 요소로는 ‘풍혈(風穴)’이 있다. 이는 누마루의 난간 아래 청판에 바람이 통하는 구멍을 뚫은 것으로, 작은 구멍을 통과하는 바람은 더욱 빨라져서 난간에 있는 이를 시원하게 한다.
(p.223)
누마루가 높고 누란을 둘러 바람이 통과하기에 거침이 없지만 머름청판에 구멍을 뚫어 경쾌하게 보이고 바람이 빨리 통과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풍혈은 한옥 건축의 세심한 지혜가 더욱 돋보이는 장치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판 ‘스카이캐슬’을 연상케 하는 고택도 보인다. 상주 대산루의 2층 누각으로 오르는 돌계단 앞 벽에는 공(工)자 다섯 개가 쓰인 꽃담이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이렇듯 다양한 한옥과 그에 따른 설명을 담담하게, 그러나 친절하게 담아낸 이 책에는 한옥에 대한 지은이의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한옥은 대강 볼 때보다 자세히 볼 때 더 아름답고, ‘볼수록 좋아지는’ 매력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한옥을 렌즈에 담고, 따뜻한 설명과 편집으로 엮은 책은 흔치 않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책에 실린 고택 가운데 하나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올해 봄, 집에서 가까운 한옥을 찾아 지은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정취를 흠뻑 느껴보면 어떨까? 한옥의 매력이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