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천 서면에 가면 〈붓 이야기 박물관〉이 있습니다.
장인 정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박물관이지요.
붓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번 이상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연암 박지원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칼날을 만들되
끝이 대추 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 담갔다가 꺼낸다.
종횡무진 멋대로 치고 찌르되, 세모 창처럼 굽고, 작은 칼처럼 날카로우며,
긴 칼처럼 예리하고 가지창처럼 갈라졌으며, 살처럼 곧고 활처럼 팽팽해서,
이 병장기가 한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이 밤중에 곡할 지경이다."
그의 유명한 소설 ‘호질’에서 붓을 형상화한 글입니다.
붓은 결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붓의 힘은 칼보다 강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노예해방을 이끈 것은 북군의 총과 칼이기도 하지만
스토우 여사의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소설의 영향이 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제공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깁니다.
"붓아! 너를 잘 사용하면 천지 만물의 이치와 운명도 모두 묘사할 수 있지만,
너를 잘 쓰지 못하면 충신과 간신, 흑과 백이 모두 뒤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붓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진실이 왜곡될 수도 있고
충신과 간신이 뒤바뀌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든, 독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글 쓰는 것의 무거움을 생각합니다.
전쟁터에서 상대방이 창과 칼을 들고나올 때 붓을 들고 나간다면
천하가 웃을 일입니다.
하지만 창과 칼 뒤에 남겨진 정신세계가
참으로 무섭다는 사실을 알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