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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미의 승화, 순백의 조선백자 달항아리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0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근간으로 왕실의 품위와 선비의 격조가 미술품에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문기(文氣)가 흐르는 품위와 격조는 조선백자의 미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17~18세기 영ㆍ정조 연간에 제작된 조선백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은 왜란(1592~1598)과 호란(1636~1637)의 피해를 극복하여 정치ㆍ사회ㆍ경제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회복하였으며, 문화적으로는 조선 제2의 황금기를 이루었습니다.

 

조선의 관요에서는 순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동화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백자가 제작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백자 큰 항아리가 바로 ‘백자달항아리’입니다. 17세기 후반에 나타나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이 백자는 보름달처럼 크고 둥글게 생겼다 해서, 1950년대에 ‘백자달항아리’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달항아리를 조선백자의 알맹이로 꼽는 이유는 절제와 담박함으로 빚어낸 순백의 빛깔과 둥근 조형미에 있습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달항아리만의 특징입니다.

 

 

조선의 이상과 세계관을 담은 백자

 

조선은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 사회였습니다. ‘예’란 유교 문화 전통에서 인간 도덕성에 근거하는 사회질서의 규범과 행동이자 유교 의례의 구성과 절차였습니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따르면, 공자는 예는 인(仁)의 실천방법으로서 ‘자신의 사욕(私慾)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克己復禮爲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를 실천하기 위해 선비들이 사욕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절제였습니다. 절제란 사람이 욕망이나 감정 표현 따위가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거나 제어하는 것입니다. 선비들은 자신의 내적인 청결함을 중시하고 담박한 생활을 지향하였으며,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담박함이란 사람의 성품에 사사로운 욕심이 없고 순박한 것을 뜻합니다. 백자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추구하는 절제와 청결, 담박함, 그리고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백자는 청자보다 기술적으로 한층 진보된 자기입니다. 먼저 철의 함량이 전혀 없이 깨끗하게 정선된 바탕흙으로 성형한 뒤 청자보다 높은 온도인 1,250도 이상에서 굽습니다. 이때 가마 내 불의 온도를 높이려면 많은 땔감이 필요하였지요. 조선 왕실은 조선 초에 백자를 왕실의 자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백토와 땔감이 많아서 백자 생산에 적합한 경기도 광주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장인 관요(官窯)를 설치하고 백자를 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땔감을 찾아 10년 정도 단위로 광주 내에서 가마를 이전하다가 영조 28년(1752) 현재의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 관요의 위치를 고정하고 안적정인 생산을 도모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전란에 따라 백자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유교 사회로서 국가의례를 중요시했던 조선에서는 이 일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백자의 빛깔이 회백색을 띠게 되었고, 청화의 수입이 차단되어 철화가 대신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숙종(재위1674~1720) 조에 사회가 안정되어 가면서 회백색은 다시 백색을 띠게 되었습니다.

 

특히 18세기 전반에는 경기도 광주군 금사리(金沙里) 관요에서 순백색의 질 좋은 달항아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왕실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취향을 반영한 백자가 제작되면서 다시 조선백자 문화가 활짝 꽃피었습니다. 청화백자에는 선비의 품격과 덕을 표현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의 사군자(四君子)와 중국의 ‘동정추월(洞庭秋月)’, ‘장한귀강동(張翰歸江東)’ 등의 장면이 한국화되어 그려졌습니다.

 

 

 

달항아리의 한결같이 따뜻한 순백색

 

백자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흰색입니다. 아무런 꾸밈이 없는 순백자든 청화나 철화로 그려진 그림이 있는 백자든, 바탕을 이루는 백색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조선백자의 흰색은 똑같은 경우가 없이 매우 다양합니다. 우윳빛이 나는 것은 유백(乳白), 눈의 흰색과 같은 것은 설백(雪白), 회색빛이 도는 것은 회백(灰白), 푸른 기를 띠는 것은 청백(靑白) 등으로 부릅니다.

 

달항아리의 흰색은 조선 전기의 순백색도, 중기의 회백색도, 분원의 청백색도 아닙니다. 유백색을 기본으로 하지만 모든 달항아리가 유백색인 것도 아닙니다. 또한 하나의 항아리조차 완벽하게 같은 흰색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불완전하게 연소된 부분이 있거나 산화되어 황색을 띤 흰색 부분도 있습니다.

 

 

어떤 달항아리에는 항아리 안에 넣어두었던 액체가 스며 나와서 물든 부분도 있습니다. 그 물든 부분 또한 항아리 전체의 흰색과 어우러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달항아리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러 흰색이 존재합니다. 흰색이지만 똑같은 흰색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것이 싸늘한 자기임에도 한결같이 따사로운 온기가 느껴지게 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달항아리처럼 높이가 40cm가 넘는 큰항아리에 아무런 무늬도 없고 꾸밈도 하지 않은 것은 유례없이 독특한 일입니다. 달항아리의 흰 표면은 마치 공간과 같아서 무엇인가 채워 넣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도 모든 무늬와 꾸밈을 없애고, 결국 표면을 흰색만으로 장식한 것입니다. 이는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은 욕망에 대한 절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달항아리의 미묘하고 진중한 흰색 표면은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과 마음의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조선만의 독특한 미감이며 욕심 없는 흰색의 공백이 가져온 아름다움입니다.

 

 

달항아리의 너그러운 형태와 담박한 선

 

달항아리의 오묘함은 너그러운 형태와 담박한 선에서도 나타납니다. 달항아리는 높이와 몸체의 가장 큰 지름이 거의 같아서 마치 보름달처럼 둥근 몸체를 이루며, 보통 높이가 40cm를 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선으로 벌어졌던 짧은 목은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곧게 선 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큰 항아리를 한 번에 굽에서부터 몸체, 어깨, 구연까지 물레로 성형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반부와 하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였습니다.

 

 

몸체를 연결하는 접합기법은 중국 명대 초기의 항아리 성형법을 도입한 것으로 큰 항아리를 만들 때 매우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중국의 큰 항아리는 모두 접합부의 외관을 매끈하게 다듬기 때문에 이어 붙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달항아리는 접합한 부분이 굽는 과정에서 갈라지거나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완전한 원형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살짝 이지러진 원형의 달항아리는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형이라고 모두 같은 대칭의 원형이 아닙니다. 이러한 형태는 고요하기만 한 듯한 달항아리에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실제 달과 같이 둥글고 자연스럽고 또 넉넉한 느낌을 줍니다. 분명 담박한 선으로 표현된 부정형의 정형을 보여주는 달항아리의 형태는 어디에도 없는 조선만의 형태입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만인을 비추는 달처럼

 

이 경이로운 원형의 달항아리는 많은 화가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과 창작의 의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화가 김환기는 달항아리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백자 그림을 실은 <백자송(白磁頌)>에서도 밝혔듯이,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모든 선은 백자의 선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그리는 그것이 여인이든 산이든 달이든 새든 간에 모두가 도자기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백자달항아리에서 선(線)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백자에서 느끼는 은은함을 사진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합니다. 가장 백자답다고 느끼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 순간은 백자가 가장 은은하게 보일 때였다고 합니다. 그는 달항아리에서 새로운 빛과 기운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달은 만인을 비춥니다. 같은 달이지만,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달을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신비로운 달항아리를 보면서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절제와 담백함으로 빚어낸 오묘한 순백의 세계가 담긴 달항아리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조선미의 알맹이입니다. 또한 달항아리는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새로운 영감과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또 다른 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김현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