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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최첨단 도구 ‘작은 돌날’

물리적 성격이 서로 다른 재료를 하나로 묶어 사용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10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박물관을 찾은 많은 분들이 스치듯 지나가는 전시실이 있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인 ‘구석기실’입니다. 심지어 일부 관람객은 “전시실에 누가 자갈돌을 가져다 놓았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관람객의 관찰이 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갈돌로 만들어진 점이 우리나라 구석기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처음 확인되어 이제는 전국에서 출토되는 주먹도끼는 자갈돌을 재료로 삼았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자갈돌을 깨뜨려 다듬어서 주먹도끼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두들겨 치거나 깨뜨리는 타격 기술은 인류 첫 돌연장인 찍개에서부터 이용되었습니다.

 

진열된 주먹도끼나 찍개는 크기도 하고 모양이라도 있으니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구석기실 마지막 장을 차지하는 작고 길쭉길쭉한 돌날은 도대체 어떻게 쓰였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단박에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앞선 시기의 주먹도끼와는 견줄 수가 없을 정도로 작고 약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길이는 5㎝ 이하이고, 너비는 0.5㎝ 안팎으로, 길이가 너비의 2배를 넘습니다. 그래서 ‘작은 돌날’이라 부르며, 세석인(細石刃)ㆍ좀돌날ㆍ마이크로블레이드(microblade)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돌날을 떼어 내는 몸체였던 ‘작은 돌날몸돌’은 세석인핵(細石刃核)ㆍ좀돌날몸돌ㆍ마이크로블레이드 코어(microblade core)라고 하는데, 어떤 구석기 유적에서는 ‘작은 돌날’과 ‘작은 돌날몸돌’이 함께 출토되기도 하며, 둘 가운데 한 종류만 출토되기도 합니다. 어느 한쪽만 나와도 ‘작은 돌날’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출토되고 있음은 구석기실 전시품 이름표에 적힌 다양한 출토 지명에서도 확인됩니다.

 

이러한 ‘작은 돌날’ 문화는 2만 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동북아시아에서 출현해서 1만 년 전까지 유지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 조사된 양양 오산리 유적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소량이긴 하지만 ‘작은 돌날’과 ‘작은 돌날몸돌’이 출토되어 한반도에서도 구석기시대의 문화 전통이 신석기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놀라운 발명: 물성(物性)이 다른 것들의 결합

 

‘작은 돌날’은 말 그대로 작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을 ‘석기’라고 하니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손에 잡고 쓰기에도 매우 불편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돌날을 왜 만들었을까요? 이른 시기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커다란 자갈돌을 두들겨 깨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도구는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크다 보니 일단 정교한 작업에 사용하기는 불편했고, 쓰다가 깨지면 다시 석재(石材)를 찾아와 다듬어서 만들어야 했으니 매우 번거로웠을 것입니다. 물론 날도 생각처럼 정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작은 돌날’은 뼈나 나무에 홈을 파고, 그 홈에 촘촘히 연속으로 고정해 날을 만들었습니다. 주로 칼이나 창 모양이었으며, 일정한 형태를 띠면서 도구가 전문화, 다양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날이 하나 깨지거나 빠져도 가지고 있던 ‘작은 돌날몸돌’에서 ‘작은 돌날’을 떼어 내 교체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돌날몸돌’만 있으면 ‘작은 돌날’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었으므로 당시 ‘작은 돌날’은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던 최첨단 기술이라고 할 만합니다.

 

 

 

새로운 소재: 으뜸 석재 흑요석

 

‘작은 돌날’은 강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무 돌이나 골라 쓴 것은 아닙니다. 앞선 시기의 석기 역시 거칠어 보이는 자갈돌이 대부분이지만,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도구를 제작하기 위한 돌을 가려 썼습니다. 큰 석기는 기계적 성질이 좋은 석영이나 규질암류의 단단한 자갈돌로 만들었습니다. 가공한 날이 정교하진 않지만 다른 석재보다 훨씬 단단해 반복해서 쓸 수 있었으며, 잘 파손되지 않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손되면 도구를 만들 석재부터 다시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작은 돌날’은 입자가 고르고 단단한 석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유문암, 응회암, 처트, 혼펠스, 흑요석 등이 대표적입니다. 작은 몸돌이라도 좋은 석재만 있으면 ‘작은 돌날’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으니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도구 제작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흑요석은 화산 지대에서 생성되는 자연 유리로 매우 날카롭고 돌날 제작도 쉬워 당시로서는 으뜸 석재였습니다. 게다가 원산지가 어디인지 추적할 수 있어 원거리 교류와 이동 경로를 탐색하기 위한 좋은 연구 자료입니다. 중부 지역의 흑요석재 유물은 주로 백두산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석기 가운데는 일본 지역 석기와 형태적 특징을 공유해 단편적이나마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기술: 타격력(打擊力)+압력(壓力)

 

이른 구석기시대 석기들은 대부분 때리는 힘 곧 타격력(打擊力)으로 석기의 모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후기 구석기시대가 되면 때리는 힘과 누르는 힘 곧 압력(壓力)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게 됩니다. 이처럼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긴 돌날도 떼어 낼 수 있었습니다. 누르는 힘은 석재 선택과 함께 ‘작은 돌날’을 생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흑요석 같은 양질의 석재를 사용할수록 ‘작은 돌날’을 수월하게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석재 선택도 매우 신중해지고 힘을 이용하는 기술도 점차 발전해 나중에는 돌 가운데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석영에서 ‘작은 돌날’을 떼어 내기까지 합니다.

 

‘작은 돌날’은 인류 발전의 기폭제

 

후기 구석기시대가 되면 많은 변화가 생겨납니다. 부분적이지만 신석기시대 석기 제작 방법의 하나로 알려진 간석기가 진주 월평・장흥ㆍ신북・단양 수양개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동해 기곡・월소 유적, 포천 화대리 유적 등지에서는 여러 모양의 화살촉이 출토되었습니다. 새로운 시기인 신석기시대에 대한 준비가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작은 돌날’은 이러한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엇보다도 물리적 성격이 서로 다른 재료를 하나로 묶어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뼈와 돌’이라는 또는 ‘나무와 돌’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재질을 결합해 부족한 자원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고, 도구의 효율성을 높인 점은 인류가 현재로 발전할 수 있었던 놀라운 기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가 금속, 플라스틱, 고무 등 서로 다른 물성을 갖는 것들로 결합하여 만들고 있는데, 그 시작이 후기 구석기시대 ‘작은 돌날’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국립중앙박물관(황보창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