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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나라가 멸망할 위기에 맞선 조선 지도자들

《병자호란, 위기에서 빛난 조선의 리더들》 박은정 글, 휴먼어린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위기에 강한 지도자.

흔히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떠올릴 때 위기에 책임 있게 대응하며, 강력한 문제해결력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엇갈리고 국민의 미래가 결정된다.

 

박은정이 쓴 책, 《병자호란, 위기에서 빛난 조선의 리더들》은 ‘병자호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1636년 조선, 조정에 있던 신하들 – 최명길,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이경석, 김상헌이 어떻게 국난에 대응했는지 살펴본다.

 

 

이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다. 최명길은 화친 국서를 썼고, 김상헌은 이를 찢어버렸고, 홍익한과 윤집, 오달제는 끝까지 화친을 반대하다가 청나라 선양으로 압송당해 죽음을 맞았다. 이경석은 굴욕과 치욕을 삼키며 1,009자의 삼전도비문을 지었다.

 

이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착잡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신세를 진 명나라의 위세가 어마하던 시기, ‘오랑캐’라 여기던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청 황제를 찬양해야 하는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위정자의 일원으로 책임지고 수습해야 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도망간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에 나온 이들은 사태를 해결하려는 책임감을 보였고,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했다.

 

인조 또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무능한 면모를 보였지만, 이처럼 오백 년 역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기 속에서 극한의 압박감을 견디며 끝까지 사태를 해결하려 애쓴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한때 화친 문서를 두고 극한 대립을 했다. 두 사람은 주화파와 주전파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최명길의 편이었다. 적은 너무 강성했고 주전파는 이를 막을 방책이 없었다.

 

(p.35)

그때 최명길이 허리를 구부리고는 땅에 떨어진 화친 문서 조각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 모여 있던 신하들 모두 최명길의 행동을 그저 바라보았다.

“굴욕적인 화친 문서를 쓰는데, 쓰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는 사람도 있어야겠지요. 공께서는 찢어 버리십시오. 저는 다시 이어 붙일 것입니다. 화친 문서를 찢는 것이 공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면, 찢긴 문서 조각을 이어 붙이는 것이 제가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최명길은 마지막 조각까지 모두 주워 들더니 말없이 걸어갔다. 찢긴 문서 조각을 품에 안고 힘없이 걸어가는 최명길의 머리 위로 눈이 내렸다. 눈인지 비인지 모르게 질척이는 눈이었다.

 

최명길과 이경석은 각각 화친 문서를 쓰고 삼전도비문을 쓴 인물로 사실상 나라를 구한 공신이었지만, 이 일로 사대부의 경멸을 받아 두고두고 ‘의리 없는 자’로 낙인찍혔다.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것은 당시 사대부에겐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였다.

 

최명길과 이경석 또한 이 점을 모르지 않았다. 명에 대한 의리론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대대손손 경멸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멸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했고, 그들은 기꺼이 그 길을 택했다.

 

병자호란의 상황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아도, 이때 항복하지 않았다면 과연 후일이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청의 12만 대군은 조선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었다. 만약 인조가 멸망을 각오하고 끝내 항복하지 않아 모든 신하가 산화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주화파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괴롭지만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김상헌 등 주전파의 후손이 득세하면서 최명길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실상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화론 덕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의미 있다.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갈 것인가 맞설 것인가? 이 책은 맞선 이들의 이야기다. 책은 주화파와 주전파의 입장을 고루 소개하고 있지만, 특히 최명길과 이경석을 새롭게 알기에 좋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라를 위해 고뇌한, ‘위기에서 빛난’ 지도자들을 되새겨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