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비판론자들은 찰스 다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스러운 하느님의 자녀인 인간인데 그 조상을 원숭이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어찌 되었거나 진화론은 대부분 과학자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족보행을 하기 전에 태초의 유인원은 나무 위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유인원 대부분이 나무 위에서 수상(樹上)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땅에 익숙해진 인간은 나무가 불편하겠지만
유인원들은 땅이 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생활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나무를 버리고 땅을 선택한 까닭이 뭘까요?
어쩌면 나무보다도 땅이 생존을 위하여 유리했을 수 있습니다.
나무 위의 생활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와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나무는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에 취약하지요.
인류 첫 문명은 모두 땅에 정착한 문명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비옥한 평야에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황하 문명은 누런 황허강 강가에서 발전했으니까요.
이들은 모두 땅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땅은 강이나 바다와 같이 물이 있는 곳을 뺀 지구의 표면을 말합니다.
그 땅 가운데서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깊이 3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세계적으로 인간에게 유익한 농경지는 땅의 4.5%가 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산지나 사막, 황무지, 또는 일기의 추위와 더위로
불모지이기 때문이지요.
땅의 소중함은 땅을 목숨처럼 지킨 우리 조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식량 자급률이 26%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경작의 소중함을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쌀을 빼면 식량 자급률이 5%도 채 되지 않으니까요.
그나마 있는 농토마저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를 위한 공간으로
도로의 편입으로 생활의 편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많아
해마다 경지 면적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요즘은 갯벌의 위대함에
간척으로 땅을 늘리는 작업도 잘 진행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기후 위기에 식량 위기, 인구절벽….
우리가 넘어야 할 것들이 첩첩산중이네요.
지구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반대쪽에서는 남은 잔반을 처리하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갑니다.
더불어 살고, 함께 나누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