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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인기가수의 숨겨진 노래들

영화 “갈매기 우는 항구”의 주제가 음반에 담겨진 노래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41]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보리밥이나 잡곡밥은 먹지 않고 쌀밥만 먹었으니 그렇지.”

“지적질” 전문가인 아내가 탁배기잔을 내려놓으며 일갈(一喝)했다.

우리는 종종 아내가 빚은 탁주 한 잔과 음악으로 산골살이의 고단함을 달래곤 하는데, 음악을 자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골라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목록(레퍼토리)이 뻔하다. 추리고 추리기 때문이다.

“판이 천장이나 만장이나 들을 게 없기는 매한가지”라 투덜대니까 아내가 놓칠새라 비수를 꽂은 것이다.

 

씹던 안주가 목에 걸리는 듯했다.

가슴에서 덜컥 소리가 나고 머리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랬나?

내가 그렇게 되었나?

혈당을 낮춘답시고 현미밥을 주식으로 삼고 매식을 할 때도 보리밥집을 찾아 뒤지면서도 정작 음악은 “쌀밥”만 골라 들었구나.

 

“이눔아야! 전깃세 생각도 쫌 하그라.”

음악실에는 이미 빈 소줏병 몇이 나뒹굴고 있었고 시각은 벌써 새벽 두 시를 넘고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음악 없이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대폿집에서 마시는 날에도 마지막은 늘 음악실에서 술자리를 마쳤다.

어느 업소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그건 불문율이었다.

그러니 가는데 마다 주인들 인상이 안 찌그러질 리가 없다.

이 글에 나오는 업소는 동해안 어느 도시에 있는 음악 감상실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다.

 

그 공간에는 주인네도 같이 살았는데, 실내가 제법 넓어 극장식 감상실과 휴게실 외에도 방이 넷이나 있어 방 두 개는 주인네가 쓰고 나머지는 디제이 여섯 명의 숙소로 쓰였다.

그 당시 다운타운 디제이들은 업소에서 숙식하는 게 기본이었다.

웬만한 음악다방에도 디제이가 서너 명은 되었는데, 여급(레지)들이야 누추하나마 방이 제공되었지만, 디제이들은 음악실(디제이 부스)에서 오글오글 모여 자는 경우가 많았다.

 

“와, 니도 글케 쌔 빠지게 해가 방송국 드갈라꼬?”

경상도 출신의 주인아저씨는 입으론 잔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격려의 빛이 고여 있었다.

 

그랬다. 나는 그 시절 음악을 구법(求法)으로 알았다.

거기에 구원이 있으리라 믿고 구도의 길을 떠나 날마다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그 감상실에는 그때도 이미 만여 장의 음반이 있었는데, 나는 광부가 되어 밤마다 소주병을 비워내며 찬밥 더운밥, 잡곡밥 가리지 않고 숨겨진 명곡들을 캐냈다.

그 결과 방송진출의 꿈을 이루어 냈고,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 음악 감상실은 나 말고도 여섯 명의 방송진출자를 배출했다.

공교롭게도 일곱 명 가운데 다섯이 나와 같은 시기에 한솥밥을 먹던 인물들이다.

가위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디제이 산실이었다.

 

자만심이랄까? 아니면 매너리즘*의 느슨함일까?

아내의 “지적질”을 한 대 맞고 뒤를 돌아보니 구도의 길은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끊겨서 보이질 않는다.

아내 말마따나 그동안 쌀밥 같은 음악만 들으며 철퍼덕 퍼질러져 있었다.

세상은 넓고도 깊은 곳이다.

내가 아는 음악보다 모르는 음악이 훨씬,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너무 오랫동안 새물이 흘러들질 않고 고여만 있었다.

광부의 절박함을 잃었던 것이다.

다시 행장을 차리자. 사막을 걷는 자에게 오아시스는 잠시 쉬어가는 곳일 뿐 살 곳은 아니다.

새로운 풍경, 더 놀라운 세상을 찾아 떠나자.

 

 

위 사진은 60년대에 유행의 한 축을 담당했던 형식의 12인치 음반이다.

영화 주제가나 아무개 작곡집 같은 제목을 달고 발매되었는데, 영화음악 집이라 제목을 붙였어도 그 영화의 주제가나 삽입곡은 한두 곡이 고작이고 인기를 끌지 못한 곡들을 “끼워 넣기” 한 음반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누구누구 작곡집 같은 음반도 마찬가지여서 간판곡 한두 곡만 빼면 나머지는 역시 끼워 넣기였다.

 

그렇다 보니 팬들이나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이런 음반들에서 뜻밖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발견된다. 독집음반 하나 내지 못하고 한두 곡 녹음한 뒤, 작곡사무실 근처를 맴돌다 사라져간 가수들의 노래도 많지만, 정상급 가수들의 숨겨진 노래들도 상당하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1964년에 상영된 영화 “갈매기 우는 항구”의 주제가가 들어 있는 음반이다.

 

영화는 흥행을 위해 광복절인 8월 15일에 맞추어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는데, 신상옥이 제작자로 나섰고 감독은 조정식이 맡았다. 출연배우로는 도금봉, 이대엽, 허장강에다 박노식 박노승 형제가 이름을 올렸다.

 

음반제작은 “미도파 음향공사”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미도파 레코드”는 1954년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지구 레코드”로 간판을 바꿔 달고 우리나라 으뜸 음반회사로 우뚝 서게 된다. 음반의 구성은 앞뒤 똑같이 여섯 곡씩 열두 곡이 들어있고 작사는 모두 월견초가 작, 편곡은 모두 이인권이 맡았다.

 

작사가 월견초는 한 때 천재 작사가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나 요절하는 바람에 그 명성을 오래 잇지 못했다. 1936년에 태어나 1974년에 세상을 떴으니 서른여덟 해를 살다 갔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3,000여 편의 시와 노랫말을 지었으니 “천재”라는 소릴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본명은 서정권이고 밀양 태생이다.

 

작, 편곡의 이인권은 가수로 출발하여 점차 작곡가와 연주자로 그 영역을 넓혀나간 만능 음악인이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에 함경북도 청진에서 임영일이란 이름으로 태어나 1973년에 눈을 감았으니 곱게 놓아 주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나이였다. 데뷔 초기에는 남인수 대역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제 이 음반 수록곡 가운데 내가 광부가 되어 캐낸 금싸라기 곡을 소개할 차례다.

“미는 곡”은 역시 표지의 제목과 같은 영화 “갈매기 우는 항구”의 주제가 두 곡이다. 간판 곡은 남일해가 부른 <갈매기 우는 항구>로 1면 첫머리에 자리했고, 부주제가 겪인 이미자의 <몸조심 하세요>가 2면 머릿곡이다. 좀 더 들어가서 얘기하자면 남일해의 노래가 세 곡, 이미자 것이 세 곡, 최숙자 두 곡, 백야성 두 곡, 신동석 것이 두 곡으로 짜여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미자 노래 세 곡이다.

다른 노래들은 첫 소절부터 그 가수의 특색이 그대로 드러나 가수가 누구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지만, 이미자 노래들은 누구라고 말해주기 전에는 알아맞히기 어려울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를 준 곡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자는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구성진 창법이 전매특허다. 그리고 높은 음도 가성 없이 편안하고 풍성하게 낸다.

 

물론 1959년 데뷔 당시부터 “동백 아가씨” 조의 창법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동백 아가씨>가 히트할 때까지 한 5년 정도는 정체성을 찾아 트로트 말고도 재즈를 비롯해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부르긴 했다. 하지만 그런 노래들은 장르만 바뀌었을 뿐 이미자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음반에서 부른 노래는 그런 것과는 사뭇 다르다. 세련미를 주기 위해서인지 서구적 창법을 받아들여 샹송 풍을 구사하고 가성도 쓴다. 탱고와 보사노바도 도입했고 목소리에 힘도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오디세이*”라 하기엔 조금 개운치 않은 구석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이 음반이 <동백 아가씨>와 같은 해인 1964년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녹음이 된 건 <동백 아가씨>보다 늦기 때문이다. 창법이 이렇게 바뀐 건 아마도 작자의 강권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당시의 가수들은 작곡가의 요구에 좋으니 마니 할 입장이 못 되었다.

 

데뷔 당시 이미자는 나화랑(본명 조경환)에게 발탁되어 반야월(본명 박창오 가수명 진방남)의 노랫말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미자류가 확립되지 않았었다. 몇 해 뒤 작사가 한산도, 작곡가 백영호와 “황금 콤비”를 이루면서 <동백 아가씨> 조가 완성된다.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 음반에서 이미자의 감춰진 보석을 캐내는 행운을 얻었다. 보석을 캐내는 건 이번 한 번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수많은 광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라는 시간이 있다.

광부 행장으로 문을 나선다.

 

수록곡

 

1면

1. 갈매기 우는 항구 – 남일해

2. 에리자 – 남일해

3. 만포선 편지 – 최숙자

4. 현해탄 달밤 – 백야성

5. 촛불을 밝혔어요 – 이미자

6. 십자로 - 신동석

 

2면

1. 몸조심 하세요 - 이미자

2. 하롯밤 목포항 - 남일해

3. 술취한 항구 - 신동석

4. 통치마 통사정 – 최숙자

5. 죽지는 않으리다 – 백야성

6. 잊어주세요 - 이미자

 

* 오디세이 : 방랑과 모험의 항해

* 매너리즘 :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가 버릇처럼 되풀이되어 독창성과 신선미를 잃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