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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자꾸만 울분이 치솟아 눈물이 나오더라

MZ 세대들의 선택, <서울의 봄> 영화 관람평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12월 3일 일요일 오후. 각시와 함께 평창군 봉평면 시골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평창시네마에 가서 모처럼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봉평에 사는 지인이 서울에 사는 아들의 추천으로 영화를 먼저 본 뒤에 나에게 추천해서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을 보게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도시와 시골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서울의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시골인 평창에서도 동시에 볼 수 있을 만큼 도시와 시골 사이 문화적인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상영시간이 무려 141분이나 되는데도 선택한 관람객들

 

<서울의 봄>은 지난 11월 22일 개봉했는데, 12월 5일 현재로 누적 관객 수 507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 제작비는 232억 원이 들었는데, 개봉 12일 만에 손익분기점인 460만 명을 넘어섰으며 12월이 가기 전에 1,000만 관객 수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3년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각각 박스오피스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흥행 속도도 제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역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들 가운데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국제시장'(2014) 보다 빠른 속도로 500만 관객을 돌파해 눈길을 끈다.

 

더구나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141분이나 되어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가뿐히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잘 만든 작품이라면 상영시간이 길어도 관객들이 선택한다는 것을 <'서울의 봄>이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음이다.

 

<서울의 봄>은 지금부터 44년 전인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군사 반란을 막기 위하여 전개되었던 아슬아슬한 9시간을 김성수 감독이 실화에 근거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1979년 10월 26일 밤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쏜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에, 권력 쟁탈을 목표로 치열하게 진행되었던 군사 반란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 인물 전두광(전두환)은 배우 황정민이 맡았고, 노태건(노태우)은 배우 박해준이, 이태신(장태완)은 배우 정우성이, 영화 속 인물 정상호(정승화)는 배우 이성민이 열연했다.

 

이태신 역의 정우성, ‘1,000만 배우’ 될까?

 

영화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다. 그는 하나회의 회유를 뿌리치고 정병주 소장을 호위하다가 선배인 박종규 중령의 총에 맞아 숨진다. 이후 현실에서, 신군부는 김오랑 소령이 사망하자 주검을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하는 패륜적인 일을 저질렀다. 이후 동료 장교들의 항의로 주검은 1980년 2월 국립서울현충현으로 이장되었다.

 

김오랑 소령 가족들의 삶 역시 비극적이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양친은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오랑 소령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두 눈이 실명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아내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송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내는 1991년 부산 자비원 마당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당시 노태우 정권은 처음에는 자살로 발표했다가 나중에 실족사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 이태신 역으로 열연한 정우성은 데뷔 30년 만에 처음으로 ‘1,000만 배우’ 이름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정우성은 동료 정상 배우들과 달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의 주역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정우성은 수경사령관으로서 책임감과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인성의 소유자인 이태신으로 열연했다. 전두광을 연기하며 분노유발자가 된 황정민, 그와 맞서는 정우성에 아마도 관객은 큰 손뼉을 쳐주었지 않았을까?

 

관람객의 과반수를 차지한 MZ 세대, 분노와 답답함에 심박수 증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서울의 봄>을 겪어보지 못하고 단지 역사 속의 사건으로만 알고 있던 2030 MZ 세대가 이 영화에 대해서 가장 열띤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서 CGV 영화관 기준으로 개봉 당일 관람객이 20대 26%, 30대 30%로 MZ 세대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를 보고 분노와 답답함에 심박수와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봄>을 본 뒤에 증가한 심박수를 스마트 워치로 측정한 뒤에 사진으로 찍어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심박수 참여잇기(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일부 젊은이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유튜브나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찾아본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나 등장인물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처럼 <서울의 봄>에 열광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이렇게 분석했다. “공정과 가치에 민감한 MZ 세대에게 <서울의 봄>에서 발생한 상황들은 큰 분노를 유발한다. 실화이기 때문에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어서 그는 “이런 희생을 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현실이 착잡하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2시간 21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이 긴박감과 안타까움 속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자꾸만 머뭇거리는 대통령, 비겁하게 숨어버린 국방부 장관, 전두광의 명령을 따라 상관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정치군인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다. 반란군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는데, 번번이 기회를 놓칠 때마다 안타까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성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말했다.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 옆에 있던 각시는 이렇게 말했다. “자꾸만 울분이 치솟아 눈물이 나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