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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균형이 맞춰지는 순간, 가벼워진다

김기훈 사진전 <비:주류>, 12월 12일부터 류가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시 제목 <비:주류>는 가운데 쌍점(콜론)이 있지만, 비주류(非主流)로 읽힌다. 그런데 사진 속에 첩첩이 술 운반상자들이 등장하면서 주류가 ‘술의 종류를 뜻하는 주류(酒類)가 아닌가?’라고 고개가 갸웃해진다. 주류 앞에 비(非)가 서니, 이제는 다시 주류가 아니라는 의미로 바뀌다가 쌍점을 의식하는 순간 비(非)는 주류와 등가를 이루는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바뀐다.

 

프랑스의 예술학교(Haute école des arts du rhin)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마르세유와 대전에서 3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나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가 자신도 ‘비주류’다.

 

 

작업노트에는, 제일 먼저 ‘술 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술을 운반하기 쉽게 담아 둔 주류상자를 일컫는 주류 운반업계 현장의 말이다. 술 짝은, 마치 관용어로 쓰일 때의 짐짝을 연상시킨다. 방해되어서 덜어버리고 싶은 대상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작가에게 술 짝을 나르는 일은, 예술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병행해야만 하는 생업활동이기 때문이다.

 

김기훈의 <비:주류>는 ‘예술적 노동과 경제적 노동 사이의 균형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사진 시리즈다. 작가는 지난 1여 년 동안 주 4일 고용조건으로 주류 유통업에 종사하며, 나머지 3일은 작업과 기획 등의 예술 활동을 해왔다.

 

 

 

“처음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잘 분배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안배도 적절해 보였고요. 하지만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노동의 강도는 너무 강했고, 육체적 피로 때문에 머리 쓰는 일조차 벅찼어요.”

 

균형을 찾기보다 예술 활동과 노동의 균형이 어긋나는 지점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다. 무거운 술 짝들을 등에 지고 옮기다가 손과 팔, 다리에 생긴 상처와 그 흔적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것이 <비:주류>의 일부분인 ‘영광’이다.

 

 

 

‘주4일제’에는 차곡차곡 쌓인 술 짝 너머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희미한 근거리의 풍경과 선명한 먼 곳의 풍경이 예술과 생업의 관계처럼 대척을 이룬다. 유일한 흑백사진인 ‘누가 웅덩이에 자갈을 채웠는가’는 주류 유통회사 입구의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의 경계를 찍은 것이다. 작가에게 이곳은 예술가와 주류 유통업자 사이를 오가는 통로이자 관문이다.

 

배경을 알기 전까지 언뜻 밋밋하고 고요해 보이는 사진들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처한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평론가 이슬비의 표현대로라면, “피 냄새, 땀 냄새, 살냄새가 물씬 배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노동을 작품의 소재나 창작 동기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작업의 문제의식으로 만들어 사유하고 공론화한다.

 

전시는 12월 12일부터 한 주 동안, 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린다.

문의 :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