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뜨끈뜨끈 온돌의 맛’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2024년 1월호를 펴냈다. 혹독한 겨울날, 우리의 선조들은 온돌을 통해 어떻게 추위를 녹였는지 살펴본다.
양반이 온돌을 깔자 청계천이 범람하다
<구들을 덥히자 청계천이 범람했다>에서 김소라 교수(경인교대)는 17세기 조선 임금의 침소부터 온돌이 깔리면서 달라지는 조선의 풍경을 담았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17세기에 소빙기의 여파가 극심했다. 조선은 현종 때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숙종 때의 을병대기근(1695~1696)은 모두 황충(메뚜기) 피해, 냉해, 가뭄, 홍수 등의 피해로 조선 백성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당시 주거환경은 온돌과 비슷한 난방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으나, 따뜻한 바닥의 좌식 생활은 줄곧 하층민의 생활양식으로 여겨졌다. 상류층은 최소 조선 전기까지 입식 생활을 주로 영위하였고, 난방은 화로 등을 활용했다. 조선에서 가장 뒤늦게 온돌을 일상화하게 된 공간은 궁궐이었다. 소빙기의 여파로 인조 때 궐내 온돌 증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며 궁궐에도 온돌이 설치된다. 장기간에 걸친 이상저온 현상은 조선 사회를 조금씩, 하지만 완전하게 바꾸었다.
한편 온돌의 증설은 땔감의 증가가 필연적이라 점차 산림은 헐벗게 되었다. 인구가 집중된 한성부는 ‘땔감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스펀지’였다. 한성부를 에워싼 산들은 점차 훼손되어, 홍수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강수량이 많은 날이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구조인 인공으로 만든 청계천은 자연 배수가 어려워 도성은 물 마를 날이 없었다. 18세기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 작업을 진행하며 영조 임금은 “개천가에 사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은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이 소나무를 베고, 경작해서 모래랑 자갈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진행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소빙기라는 거대한 이상기후 현상이 배후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없었다.
ㅁ자집의 온돌방 확장은?
<조선 시대 ㅁ자집 온돌방의 확장과 건축 계획>에서 박진기 연구원은 전통 목조건축에서 온돌방의 설치가 고려해야 했던 다양한 부분을 전한다. 온돌 구조를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온돌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 온돌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특성들이 평면부터 구조 계획까지 영향을 주고 단면 공간의 활용과도 연관된다.
ㅁ자집에서 맞배지붕을 사용하는 형태의 경우 각 채(안채와 익사채, 대문채, 사랑채)의 도리(지붕을 구성하는 주요 구조재)들이 층을 두고 연결되는데, 대부분 경사지에 지어진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팔작지붕을 기본으로 하는 집에 견줘 상대적으로 부재의 종류와 수량이 적고, 구조가 간략하여 경제적이며, 경사지에 건축되었을 때 채광이나 배수의 측면에서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유형의 대부분 집에서는 모서리의 방이 확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유형의 온돌은 아궁이 쪽으로 점차 낮아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방이 확장되더라도 구조적으로 지형과 충돌하지 않는다. 온돌 구조의 확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지형, 지붕 구조와 결합하여 많은 고민을 거듭하게 되고, 익사채의 중층 공간 활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관광하듯 지나쳤던 집들을 당시 장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하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거쳤던 많은 고민이 보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뜻함이 가져오는 평범함
이 밖에도 누리잡지 담(談)에서는 온돌에 대한 다양한 뒷이야기를 다룬다.
이번 호부터 <독(獨) 선생전>으로 연재되는 스토리웹툰 1화 ‘묵적(墨跡)만 못한 신세’에서는 《쇄미록( 尾錄)》과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속 온돌 이야기를 웹툰으로 선보인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홍승지 자녀의 가정교사로 있는 묵적골 독선생이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 제자의 뜨끈한 온돌방과는 달리 온기 하나 없는 방에서 버티지 못하고 절절 끓는 방에서 보낼 수 있는 잔꾀를 낸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오순도순이라는 환상>에서는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사천가>의 순덕을 통해 따뜻한 온돌에서 비좁더라도 가족과 둘러앉아 오손도손 김밥을 팔아 살아가는 ‘평범함’을 꿈꾸었지만, 이런 ‘착함’은 결국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 결국 순덕이 변장한 ‘악함’ 오재수를 통해 사이다를 마신 듯 시원함을 안기는 역설을 목격한다.
<구들장 밑에 사는 양수지조(陽燧之鳥)>에서 구들에 사는 ‘불돌이’, 양수지조(陽燧之鳥)를 만난 ‘목금’이와 ‘백이’가 새 이야기를 시작한다. 땔감이 부족해 삭정이라도 줍기 위해 산을 올랐다가 산불을 일으키는 양수지조를 만나게 되고, 불돌이로 이름을 붙여 꼭 안아서 돌아오자, 물돌이는 아궁이에 숨어든다.
<오늘을 기록하며 삶의 온기를 전하는, 조성당(操省堂)>에서는 김택룡(金澤龍, 1547~1627)의 당호이자 ‘항상 마음을 바로잡고 되돌아 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조성당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리잡지 담(談) 2024년 1월호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누리집(https://story.ugyo.net/front/webzine/wzinSub.do?wzinCode=1011&subCode=202401)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