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소개의 글> 우리는 모두 다른 얼굴과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며,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땅하다. 창작자가 생각한 주제를 관람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자신의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 혹은 평론은 여러 경력을 갖지 않으면 언론사에서 쉽게 글을 올려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그 글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고심 끝에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문화평론가로서 성장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예비 문화평론가 소개”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 소개에는 ‘문화톺아보기’의 문화평론가로서 후대들에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의 발전을 위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필자의 <비평> 수업을 통해 양성한 이들로 제한하여 뽑았다. 많은 신청자 가운데 <우리문화신문>의 주제와 색깔이 어울리고 단순한 감상과 평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주체성으로 시대의 영향이 되어줄 글을 기준으로 하였다. 이 소개에 도움을 주신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번 “예비 문화평론가 소개”는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재학 중인 박하빈 학생의 글이다. 이 글은 한국 춤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한국춤의 특성과 본질을 소개하며 앞으로의 한국 춤에 대한 심오한 고민과 더불어 방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자유롭고 거침없으나 박하빈 양의 글에는 자신이 경험하고 만난 한국춤에 대한 사랑과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그 사랑과 바람이 지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 (문화평론가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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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의 종류는 전통춤, 신전통춤, 창작춤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무용의 이러한 구분은 예술장르의 해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미술, 음악, 무용 등의 순수예술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장르가 해체되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본질’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무용을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는 본래 전통춤에 나타나던 사위나 음악장단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무용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들을 지켜나가면서 현대적인 움직임과 음악을 사용한다. 한국무용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특성들에는 정중동, 호흡이 전달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몸의 움직임, 곡선형태의 움직임, 땅과 상호작용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안무가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롭게 나타내되 이 특성들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작품에 내재해야 한다. 한국장단의 가변성〮즉흥성을 통해 흥과 멋을 내고 이에 맞춘 강렬한 현대적 움직임과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는 한 무대가 있었다. 바로 국립무용단의 ‘넥스트스탭l’에서 탄생한 <가무악칠채>다.
국립무용단의 ‘넥스트스텝I’은 “현대적인 한국춤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젊은 안무가들에게 던져주고서 이를 작품으로 만들게 한 실험적 무대다. 무대에 오르게 된 세 작품 가운데 안무가 이재화의 <가무악칠채>는 세상에 선보여지자마자 대중과 평단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성공하며 2018~2019 국립극장 정규 공연 종목으로 뽑혔다.
무용평론가 이지현은 “칠채의 황홀한 꿈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지루해지지 않으며, 거침없이 장단에 펄떡거리는 몸과 춤의 향연을 채우는 그들의 열정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라는 극찬을 담은 글을 썼다. 이를 통해 그들의 무대가 얼마나 뜨겁고 열정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필자가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17살 2018년 ‘넥스트스텝l’을 관람한 적 있다. 흔히들 말하는 ‘무용계’라는 생태계에 발을 내디딘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관람한 ‘넥스트스텝l’의 <가무악칠채>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무대를 시작으로 필자는 그들을 존경하고 우상으로 삼으며 무용을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을 처음으로 관람한 시기가 6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공연을 보면서 발을 함께 구르고 들썩거리던 내 모습이 생각나고, 가슴이 웅장해진다. 또한 눈으로 ‘관람’했던 각각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장악한다. <가무악칠채>가 필자의 마음과 기억 속에 ‘각인’된 것이다. ‘각인’이란 ‘머릿속에 새겨 넣듯 깊이 기억됨. 또는 그 기억’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가무악칠채>는 “낯선 칠채는 어느덧 익숙한 리듬이 되고, 때론 유쾌하게, 때론 강렬하게, 혹은 긴 여운으로 확실히 ‘각인’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국립무용단의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 ‘각인’은 한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기도 하는데 그 기억의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이유는 각인된 것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우리가 ‘그때 그 순간’을 ‘지금, 여기’로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안무가 이재화는 ‘현대적인 한국춤’에 대한 대답을 작품에 담아 대중에게 선보임과 동시에 완전한 몰입과 각인의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안무가 이재화의 <가무악칠채>는 한국춤의 현대화’를 선보였다. 그의 첫 호기심은 ‘하나의 장단이 연주되는 속도와 악기 변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였다. 그 호기심의 확장은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통해 보여줬다. 이 모든 요소에는 음악, 춤, 조명, 효과, 극 등이 포함될 수 있겠다. ‘칠채’라는 장단을 현대적으로 다양하게 변주시켜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끌어당겼고, 화려한 조명장치로 악기의 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했으며, <가무악칠채>라는 제목에 걸맞게 칠채장단 속에서 자유롭게 춤췄다.
이 작품은 예술 장르의 경계가 우리의 인식보다 빠르게 해체되어 가는 지금, ‘예술’과 ‘장르’에 대한 본질적 질문의 대답을 찾은 작품이다. 여러 장단의 이음으로 고조되는 전통적 한국무용공연 음악 형태에서 벗어나, 무용음악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칠채장단의 변주로만 작품을 구성한 점, 관객이 칠채의 장단을 낯설게 인식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도록 비트(박자 혹은 리듬) 및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 일정한 구간을 반복 재생하는 곡 구성 방식 혹은 그러한 악기) 등의 요소를 융합한 점,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조명과 무용수들의 춤으로 무대 위에 재현해 내 완전한 몰입의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 점이 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무용계에서 이와 같은 시도를 했다는 것이 타 예술 분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인간’인 우리가 만들어 가는 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인현상’이 일어나는 경우는 충격적인 무언가를 접했을 때나 본래 생각하던 것과 현실의 차이가 극도로 벌어질 때이다. 각인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인 ‘도장 찍음’처럼 ‘쾅’하고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이다. 사실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한국무용이 정확히 어떤 춤을 추는 건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당연한 현상이다. 만약 본인의 주변 사람에게 한국무용에 관해 물어보면 그들은 대부분 정형화된 대답을 할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춤이나 한국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이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그 까닭은 한국무용이 ‘살풀이’, ‘부채춤’, ‘장고춤’ 등의 전통무용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이미 각인되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가무악칠채>를 관람한다면, 그들은 남은 삶 속에서 누군가 한국무용에 관해 물었을 때 중독성이 강하고 열정적이며, 부드러우면서도 박진감 있는 춤을 떠올릴 것이다.
<가무악칠채>는 각인의 무대가 확실하다. 공연을 관람하는 ‘나’라는 관객을 ‘각인’시키며 사로잡았다. 이러한 ‘각인’은 한국춤을 현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예술을 관람하는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줄 것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 관객층, 무용예술의 추구 방향 등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가무악칠채>에서 보여준 ‘각인’이라는 요소야말로 우리 춤의 본질을 인지하고 작품에 담기 위한 노력처럼 한국 춤 공연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