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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군관 나신걸의 절절한 아내 사랑 한글편지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5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분과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오. 집에도 다녀가지 못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울고 갑니다. 어머니 잘 모시고 아기 잘 기르시오. 내년 가을에나 나오고자 하오. 안부가 궁금합니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했는데, 장수가 혼자만 집에 가고 나는 못 가게 해서 다녀가지 못합니다.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에서 회덕골로 사람을 보내 귀양살이를 시킨다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2011년 대전 안정 나씨 문중의 무덤을 이장하다가 발견한 한글편지인데, 김영조 소장님은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에 이 편지도 올렸습니다. 이 편지는 조선 전기 군관 나신걸(1461~1524)이 근무지가 갑자기 북쪽 변방으로 변경되면서 고향에 있는 아내 신창 맹 씨에게 쓴 겁니다. 한글이 반포된 지 44년 뒤의 한글편지로 현존하는 한글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입니다.

 

 

보통 ‘조선 시대의 한글 편지’하면 여인네들이 쓴 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 나의 편견인가?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가 남자가 쓴 것이라니 더 눈에 띄네요. 이뿐만 아니라 기록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도 남자가 쓴 것입니다. 《문종실록》에 보면, 양녕대군이 한글 반포한 지 불과 5년 만인 1451년 11월 17일 문종에게 한글편지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세종대왕이 비밀리에 연구하고 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포한 한글이지만, 생각보다 빨리 온 나라에 전파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갑작스러운 전근이라고 하더라도, 멀고 험한 북쪽 변방으로 전근 가면서 가족도 못 보고 가나요? 그것도 부대원 전원이 그렇다면 모르겠는데, 지휘관만 혼자 집에 갔다 오다니, 이러고도 부대가 제대로 통솔이 되겠습니까? 조선의 군대에 이런 한심한 장수들이 많으니, 임진왜란 때 조선 육군이 형편없이 깨진 것에도 다 까닭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변방으로 가면 다음 해 가을에나 나올 수 있다고 하니, 군관 나신걸은 더욱 비통했을 것입니다. 아예 편지에 울고 간다고 썼네요. 혹시 검열에 걸리면 불만투의 편지가 문제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런 것 개의치 않고 이런 편지를 썼다는 것은, 그만큼 나신걸 군관의 불만이 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 소장님은 계속되는 편지 내용에서 나신걸 군관은 아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해서 집안의 논밭을 다 남에게 소작을 주고 농사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였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분과 바늘을 선물로 보냈다는데, 아마도 중국 수입품으로 초급 무관의 몇 달 치 월급을 털어서 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나신걸 군관의 편지는 올 3월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화재청 발표에 따르면 현존하는 첫 한글편지라는 값어치뿐만 아니라, 편지 내용에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등을 알 수 있고,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네요.

 

나신걸 군관이 북쪽 변방의 근무를 마치고 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와의 사랑은 또 어떻게 펼쳐졌을까? 궁금한 것이 많지만 나신걸 군관에 관한 내용은 이 편지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편지가 없었다면 우린 나신걸이라는 군관의 존재 자체도 몰랐을 것입니다. 나신걸 군관이 변방 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재회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마 나신걸 군관은 아내를 힘껏 껴안고 진하게 뽀뽀도 하지 않았을까요? 2011년 홀연히 나타난 한글편지 덕분에 조선의 사랑꾼 나신걸 군관을 알게 되었으니, 역시 기록의 힘은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