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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천재시인 허초희의 세상 향한 뜨거운 열정

콘텐츠플래닝 뮤지컬 <난설>,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 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무 날에 누구의 아무나가 되어

어떤 날에 서로의 지음이 되어

이 세상의 낮과 밤의 주인이 되어

이 붓끝으로 은빛 창문이 노을을 누르면

구슬 문이 바다에 다다르면 세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시고

맑은 바람과 이슬 속에 노니소서

 

이는 어제 4월 3일 저녁 4시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한 ‘콘텐츠플래닝’의 뮤지컬 <난설> 무대에서 울려 퍼진 노래로 <난설>의 주인공인 허초희와 허균, 이달이 세상 사람을 향해 외치는 소리다. 이 세상, 어떤 날에 서로의 지음이 되면 정말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질 것이 아닌가?

 

 

뮤지컬 <난설(蘭雪)>, 굳게 닫혀있는 세상의 문을 오직 붓 하나로 열고자 한 천재시인 허초희, 어둠을 밝히는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스승 이달과 아우 허균, 세상의 밤을 먹으로 갈아 그들이 그린 세상과 시, 눈처럼 흩어져 비로소 이 세상에 닿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졌다. '난설'은 허균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허난설헌의 시이자 의미며, 아직 소화되지 못한 채 허균 안에 남아있는 허난설헌의 시를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극작가 옥경선은 “비록 그것이 상처뿐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깨어지고 부서지더라도 불완전한 자기의 삶으로 시를 완성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이들의 시를 노래해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사랑하는 시를 해석하는 데 있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그 시는 고정되고 박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또 다른 시가 될 수 있으며, 비로소 필멸의 존재가 영원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라고 <난설>의 기획의도를 말했다.

 

뮤지컬 속 허균은 “저기 세상 밖 / 거짓된 말들에 더는 속지 마오 / 그림자와 한숨도 거기 있다오 / 여기서 더는 가지 마오”라고 누이가 세상에 나가려는 것을 말리고 또 말린다. 하지만 허초희는 “세상의 낮들을 피해서 / 캄캄하고 어두운 곳으로 깊이 숨어도 / 다른 밤 세상 끝으로 깊이 숨어도 / 피할 수 없어 / 더는 도망칠 수 없어서” 나간다고 말하며, “나라고 두렵지 않겠느냐?”라고 고백한다.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많은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변화를 꿈꿀 수 없었지만, 초희는 세상으로 뛰쳐나가려 한 것이다.

 

 

허균과 허초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오누이지만, 세상으로 뛰쳐나가려는 누이와 그것을 말리려는 동생의 끝없는 갈등이 무대 전체를 감돈다. 그 속에서 허초희 역을 맡은 배우 최연우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더나아가 잔잔하게 자기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노래는 예스24스테이지 무대가 좁게 느껴질 만큼 처절한 감동을 주었다. 또한 허균 역의 윤재호, 스승 이달 역의 고상호와 함께 중창으로 부른 노래들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냈다.

 

공연에는 오직 세 사람만 출연한다. 대형 뮤지컬에 견주면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뮤지컬이 말하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데는 오히려 효율적일 수도 있음이다. 반주에는 거문고ㆍ해금 같은 국악기에 피아노의 선율이 더해져 참 아름다운 공연이 꾸려지고 있다. 또 공연 중간중간에 실제 허난설헌의 시 가운데 5편의 시(견흥-遣興, 상봉행-相逢行, 가객사-賈客詞, 죽지사-竹枝詞, 유선사-遊仙詞)와 그녀가 남긴 유일한 산문(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무대 바닥에 비춰주는 효과로 뮤지컬이 토종임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이 뮤지컬은 전개가 느슨한 점과 단조로운 출연진, 극적 반전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관객에게 모자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천재 여류시인 허초희의 시를 세상에 내놓는 방법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이날 공연에는 허초희 역에 최연우, 허균 역에 윤재호, 스승 이달 역에 고상호가 무대에 올라 가창력과 연기력을 뽐냈지만, 번갈아 출연하는 출연진으로는 허초희 역에 정인지ㆍ김려원, 허균 역에 최호승ㆍ박상혁, 스승 이달 역에 김도빈ㆍ주민진ㆍ박정원이 있다.

 

 

 

제작진으로는 총괄 프로듀서 노재환, 프로듀서 박정인, 예술감독 송은도, 연출 이기쁨, 작/작사 옥경선, 작곡/음악감독 다미로, 안무감독 류정아, 무대디자인 박상봉, 조경디자인 이주원, 영상디자인 고동욱, 음향디자인 송선혁, 의상디자인 홍문기, 소품디자인 노주연, 분장디자인 조미경, 제작/무대감독 이재은, 제작감독 김지은, 기획팀장 전혜연, 기획팀 신은지ㆍ김규리, 기술감독 최용준이 함께 한다.

 

이날 공연을 본 전성은(37) 씨는 “허균에 가려 있던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허초희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허초희 역으로 열연한 최연우 배우는 뛰어난 가창력이 있음에도 뮤지컬에 맞게 다독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연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서로 ‘지음’이 되라는 듯 잔잔한 울림을 전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공연 시각은 화요일 밤 8시, 수요일 저녁 4시와 8시, 목요일~금요일 밤 8시, 토요일 낮 3시와 저녁 7시, 일요일과 공휴일은 낮 2시와 저녁 6시다. 입장료는 R석 70,000, S석 50,000이며, 예스24티켓(http://ticket.yes24.com/New/Perf/Detail/Detail.aspx?IdPerf=48648)에서 예매할 수 있다. 공연에 관한 문의는 콘텐츠플래닝 전화(02-747-2232)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