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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간토대학살> 101돌, 핏물에 젖어 떠내려간 사람들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서 <1923 간토대학살> 영화 시사회 열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간토에 묻힌 사람은 누구

   그 누구일까 그 누구일까

   눈물에 젖어

   핏물에 젖어

   강물에 떠내려간 사람들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했네

 

   아기가 죽고

   어미가 죽고

   아기가 죽고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아라카와강에 떠내려간 사람

 

영화 상영 중에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ㆍ작곡하여 노래를 부른 가수 김현성의 구슬픈 노래 '그날, 1923'이 흘러나온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관동에 묻힌 사람은 눈물에 젖어, 핏물에 젖어, 강물에 떠내려간 사람들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했다고 울부짖는다. 1923 간토대학살> 영화 곳곳에 나오는 주제가는 가수 김현성이 전부 작사작곡한 노래다. 김현성의  간토학살 음반이 곧 나올 예정이란다.시사회장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오열한다.

 

 

 

‘위키백과’에는 <간토대학살>을 “간토대학살(關東大虐殺) 혹은 관동 대학살은 1923년 일본 도쿄도 등을 포함한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간토대지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하여 조선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무차별적인 대량 학살 사건이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關東大地震朝鮮人虐殺事件) 또는 '1923년 조선인 대학살'이라고도 불린다. 희생자 수는 약 6,000명 혹은 6,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추가 자료가 발굴되면서, 희생자가 약 2만 3,058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라고 설명한다.

 

기자는 지난 2010년 8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을 따라 9박 10일 동안 일본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답사단은 <간토대학살> 현장을 방문하면서 양심 있는 일본인들을 많이 만났고, 그때 희생된 조선인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년 뒤 그때를 회상하며 이윤옥 기자는 <우리문화신문>에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련 글을 연이어 올린 적이 있다.

 

그 기사들의 제목은 ‘도쿄 요코아미쵸공원 관동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추도비를 찾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순직자추도비와 아라카와 학살현장’, ‘치바현 나기하라마을의 조선인 학살현장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90년을 맞아’ 등이다.

 

<간토대학살>이 일어난 지 벌써 101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6,600명 이상이 학살되었다고 얘기되는 <간토대학살>에 관해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정확한 진상규명도 하지 않고 발뺌만 하고 있다. 더구나 간토 조선인 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국회의원 100명이 지난해 3월 8일 '간토 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지금 당위성이 차고 넘치는데도 이 법안ᄋᆖᆫ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던 차에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간토학살진상규명법 제정 촉구 <1923 간토대학살> 영화 시사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는 도종환 국회의원ㆍ연세대민주동문회ㆍ시민모임독립 주최로 열렸으며, 제작과 각본감독에 김태영, 공동감독에 최규석,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에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이진희 박사가 맡았다. 시사회 전 도종환 의원과 진선미 의원 그리고 시민모임 독립 이만열 이사장과 이진희 박사가 인사말을 했다.

 

 

 

영화는 검정 바탕의 화면에 “1923 간토대학살”이란 글자만 커다랗게 나오면서 시작된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간토대학살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사진과 문헌 자료들이 나오고, 오랫동안 이 부분을 연구했던 학자들과 희생자 후손들의 대담이 이어진다. 시사회 전에 이진희 박사가 “현장을 방문하고 후손들을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울었던 적이 많았다.”라고 말한 대로 중간중간 관람객들은 울컥울컥하는 순간을 맞고 또 맞는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일본 정부 주장 233명, 실제 집계되고 밝혀진 조선인 희생자 6,661명”이라는 자막과 당시 일본 신문들이 불령선인의 짓이라는 유언비어를 사실처럼 보도한 신문 스크랩 사진이다. <간토대학살>은 일본 정부와 군대 그리고 경찰은 물론 일본 언론이 부추긴 추악한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인이 학살 현장에 추도비를 세우고 이를 지켜내려 노력하는 부분과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 장면도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작은 상에 촛불을 켜고 고무신이 놓여있는 사진도 물론 긴 여운을 남긴다.

 

시사회가 끝난 다음 김태영 감독과 이진희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등이 참여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장애 3급 판정을 받고 목발을 짚으면서도 여러 해 동안 일본을 오가며 작업한 김태영 감독은 질문 가운데 일본 정부가 책임회피 하는 까닭에 관해 “만일 일본 정부가 시인하는 순간 ‘천황’이 책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시사회가 끝난 뒤 청중들은 <간토대학살>의 희생에 대한 숙연한 분위기 탓으로 쉽사리 대회의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신월동에서 왔다는 강희영(57) 씨는 “<간토대학살>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처참한 일인 줄 몰랐다. 국회에서 특별법이 빨리 통과되어 진상규명을 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라고 말했다.

 

세계 처음 간토대지진 대학살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간토대지진 학살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 이진희 박사는 “이 작품은 반일 영화가 아니다”라며 “감사함과 존경심을 느끼게 한 일본의 시민단체 이야기와 새롭게 발굴한 내용으로 감춰진 진실을 추적하는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말했다. 다음에 이진희 박사와의 대담을 싣는다.

 

 

한국, 자학적 식민사관과 색깔론 탓 간토대학살에 관한 목소리가 작을 것

<1923 간토대학살>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이진희 박사 대담

 

 

- 어떤 계기로 간토대학살에 천착하게 되었나?

“1999년 요코하마 체재 중 모순 섞인 시립도서관 내 간토대학살 관련 자료를 접하면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소명감이 들어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

 

- 그때 희생된 조선인 수를 6,661명으로 특정했는데 그 근거는 어디에 있나?

“그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사 명령을 받은 한인 조사단이 발로 뛰어 조사한 뒤 독립신문사에 보고한 숫자로 1923년 11월 28일 자 상해판 <독립신문>에 보도된 숫자다.”

 

- 일본에서는 간토대학살에 관한 목소리가 작지 않은데 정작 한국에서는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 등 그 목소리가 매우 작다. 그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복합적 원인이 있지만, 우선 탈식민ㆍ탈냉전적 사고의 부족에서 기인한 자학적 식민사관, 색깔론과 자료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 오는 5월 13일 월요일에는 일본 국회에서도 상영한다고 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일본에서의 방해와 도움은 어떤 것들이 있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정치인, 시민단체의 협조에 감사한다. 물론 재일동포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도 포함된다. '방해'라기보다는 따라야만 하는 자기 검열의 규칙 예를 들면 천황에 대한 언급 자제 등은 제작자 쪽만 아니라 등장하는 일본인과 일본 내 단체 기관 모두에 적용되어 삭제를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 문제다.”

 

-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과 보람 있었던 일을 꼽자면...

“물론 가장 큰 어려움은 제작비다. 며칠 뒤 일본 국회에 가야 하는데 4년 이상 소요된 억대의 제작비로 인해 제작자들의 비행기표 숙소 식사비용도 없는 상태다. 3급 장애인인 김태영 감독이 고시원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이으며 역사의 진실을 좇는 대작을 만드는데 과연 대한민국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 앞으로 또 다른 계획이 있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거짓과 사회악을 꿰뚫어 보고 함께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육자로서, 지구촌 시민으로서 내 몫을 부지런히 감당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