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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꽉 채워진 듯한 소만, 그러나 빈 곳은 있어

나희덕, <소만(小滿)>
[겨레문화와 시마을 18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만(小滿)

 

                                              - 나희덕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동을 좀 덮어다오

 

 

 

 

모레, 5월 20일은 24절기 가운데 여덟째 ‘소만(小滿)’으로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온 세상이 가득 찬[滿]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는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해 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드는데 들판에는 밀과 보리가 익고, 슬슬 모내기 준비를 한다. 또 이 무렵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어대며,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우리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런데 소만 때는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죽순에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준 대나무만큼은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봄의 누레진 대나무를 가리켜 대나무 가을 곧 ‘죽추(竹秋)’라 하는데 이는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것과 같다. 또 만물은 가득 차지만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구황식품(흉년에 곡식 대신 먹는 먹거리)을 구해야 할 때다. 그래서 소만은 우리에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따뜻함이 있으면 차가움도 있으며, 가득 차 있으면 빈 곳도 있다고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 준다.

 

여기 나희덕 시인은 그의 <소만(小滿)>이란 시에서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라면서 이게 바로 ‘소만’ 때라고 말한다. 또 “조금 빈 것도 같게 / 조금 넘을 것도 같게 /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 내 마음의 그늘도 / 꼭 이만하게 드리워지는 때”라고 노래한다. 요즈음 세상은 소만 때의 초록처럼 가득 차 보인다. 하지만, 가득 찬 현대문명의 속에서도 빈 곳은 분명히 있다. 이런 때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한 ‘더불어 살기’의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를 잊지 말아야만 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