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45년 8월, 종전(終戰) 이래 중국 하얼빈의 731부대를 찾아가보지 않았던 시미즈 씨가 93살의 노구로 이곳을 찾으려는 까닭에 대해 “오랜 세월 이곳을 가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무서움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라고 말했다.
14살의 어린 나이로 세균을 전쟁 무기로 쓰기 위해 생체실험을 일삼던 악명높은 일본 관동군의 731부대에서 일했던 시미즈 히데오(清水英男) 씨는 올해 93살이다. 이곳 구 관동군방역급수부(旧 関東軍防疫給水部)에서 일했던 시미즈 씨는 오는 8월 12~16일, 노구를 이끌고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나가노현 이다시(長野県飯田市)의 미나미신슈 신문(南信州新聞) 6월 14일 치에 따르면, 시미즈 히데오 씨와 함께 하얼빈 731부대를 방문할 사람을 모집 중이라는 기사가 실려있다.
1945년 4월, 14살이었던 시미즈 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하얼빈 교외에 있던 731부대의 본거지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종전 뒤 귀국할 때까지 약 4달 동안 인체를 해부한 표본을 관리하거나 ‘마루타’라고 불리던 포로의 감옥을 폭파하기 위한 폭탄 운반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상관으로부터 ‘발설하지 않겠다는 입막음’을 당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아왔다. 그러다가 83살이던 10년 전 2016년에 <이다시 평화기념관을 생각하는 모임(飯田市平和祈念館を考える会)>의 요시자와 아키라(吉沢章) 부대표를 만남을 계기로 자신이 과거 731부대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시미즈 씨의 731부대 방문을 추진 중인 <이다시 평화기념관을 생각하는 모임(飯田市平和祈念館を考える会)>의 요시자와 아키라(吉沢章) 부대표는 “역사의 진실을 차세대에 전해 갈 필요가 있다. 시미즈 씨가 731부대에 서서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0월, 이곳을 직접 방문한 기자는 도저히 그 넓이(약 73,000평)를 가늠할 수 없는 731부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소름이 끼치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대를 폭파하고 떠나기 전에, 이곳은 엄청난 높이의 담장이 둘러 처져 있었다. 그들은 이곳의 모든 정보가 새 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외부 세계와 차단된 상태로 이곳을 관리하였는데 각종 세균실험을 할 수 있는 139개의 건물을 비롯하여 이곳에 근무하는 일본 군의관의 숙소와 군인가족 사택, 학교, 세탁소, 예배당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부대 안에 비행장까지 갖추고 중국내 세균전을 위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일부 수용자의 위(胃)는 외과적으로 절제하여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일부 수용자는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였다.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를 산채로 벗겨내었다. 의식이 살아 있는 반 시체상태의 실험자는 불태웠다.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수술실험도 자행했다.” 이보다 인간이 더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이기를 포기한 731일부대의 잔혹함은 끝이 없이 전시실 마다 차고 넘쳐났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 앞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한숨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왜 아니 그럴까? 자기의 동포가 까닭 없이 잡혀 산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세균을 강제로 집어넣어 퉁붕 부은 모습으로 시커멓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으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수용자들 가운데는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조선인도 많았습니다. 이곳 731부대로 잡혀온 사람들은 살아나간 사람이 없습니다. ” 안내원은 끊임없이 당시 731부대 안에서 벌어진 잔인하고 끔찍한 생체실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고 전시관 벽면 가득 천인공로할 사진과 당시 상황을 재현한 모습이 섬뜩하여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했는데 한국인 희생자 한성진(韓成鎭, 1913년생, 함북 경성, 1943년 6월 25일 체포), 김성서(金聖瑞, 함북 길주, 1943년 7월 31일 체포), 고창률(高昌律, 1899년생, 소련 공산당 첩보원,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 1941년 7월 25일 체포) 등도 항일운동 또는 반파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끔찍한 실험대상으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기록해 두고 있다.
한편, 1947년 미 육군 조사관이 도쿄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출혈열 101개 등 수백 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및 생체해부실험 등과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실험, 가스실험 등이었다.
당시 731부대 장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발견되어 일본군의 세균전 및 생체실험이 사실로 입증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吉林省) 눙안(農安)과 창춘(長春)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이 탓에 중국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현재 중국정부는 731부대를 복원하여 이곳에서 자행한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누구라도 관람할 수 있게 해놓았다.
79년 전, 악명높은 731부대에서 14살 소년이 겪어야했던 생체실험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해온 시미즈 히데오(清水英男, 93세) 씨의 731부대 방문 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길 빈다.
*사진은 기자가 2014년 10월 3일 하얼빈 731부대 취재시 찍은 사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