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방을 도와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한신입니다.
무수한 공을 세워 유방에게 천하를 안겨주고
자신은 제(齊)왕과 초(楚)왕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항우의 군대에 입대했지만, 중용 받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항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방의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기지요.
그는 생애가 화려한 만큼 많은 고사성어를 만들어 냅니다.
‘과하지욕((胯下之辱)’으로 불량배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치욕을 참아 목숨을 부지하고
초왕이 된 뒤에 그를 찾아내 용서하고 벼슬을 내렸다는 고사와
‘일반천금(一飯千金)’으로 동네 아낙이 한신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면서
"당신에게 돌려받을 것은 생각도 안 한다."라고 했는데
후에 천금으로 보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사면초가(四面楚歌)’로 항우와의 마지막 결전인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사지로 몰아넣은 이야기와 함께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유방과 군대의 운영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그것인데요.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가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고사성어지요.
한신은 군대를 통솔하는 영역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신들린 전략, 전술적 역량을 보여주었지만,
전투 이외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모자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임금이나 신하로서 정치력은 부족함이 많았고 처세술은 바닥이었습니다.
한신은 모든 문제를 자기 생각대로 판단합니다.
결정적 순간에도 이성보다는 감정을 앞세웁니다.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공을 세웠더라도 인간적인 믿음이 없는데
병법에는 귀신인 한신을 왕으로 그냥 놓아두기에는
유방 입장에서는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겁니다.
동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장량은 훌륭한 모사꾼이었지만
통일되고 난 뒤 낙향하여 조용한 여생을 보냅니다.
그는 천수를 누렸고 대대손손 잘 살아갈 토대를 마련하지요.
하지만 한신은 권력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은 가마솥에 삶겨 죽임을 당하는 ‘팽형’을 면치 못하지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고
세상을 오만으로 살아낼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사기》의 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우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자기의 공을 과시하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았다면, 그가 세운 공은 아마도 주나라 천 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太公) 등이 세운 공훈에 비견되어 후세들로부터 혈식(血食, 자손이 이어지고 제사가 지속됨)을 받아먹으며 받들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의 정세가 이미 정해진 뒤에야 반역을 꾀했으니, 일족이 멸망한 것은 역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한 빛은 반짝거리지 않는다."라는 말씀이지요.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의 미덕을 잊어서는 안 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