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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눈을 감고 맞읍시다

그렇다 이젠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계절이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6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잠시 눈감고

바람소리 들어보렴

간절한 것들은 다 바람이 되었단다

내 바람은 네 바람과 다를지 몰라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바람처럼 떨린다

                               ... <바람편지>, 천양희​​

 

그래 이제 길고 긴 더위에 지친 우리들이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한여름 무더위가 언제 갈 것인가? 한낮부터 밤까지 땀을 흘리던 우리들의 바람은 이 바람이었다. 우리의 '바람'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새', 아니 '마침내' 오고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늘 그렇지만 새해가 시작된 게 어제 같은데 한 해로 치면 3분의 2가 가고 있다는 뒤늦은 인식과 함께 온다. 이제 올해의 3분의 1이 남았을 뿐이라는 탄식과 같은 것 아닌가? 곧 9월이라 뜻이다.​

 

푸른 옷 벗어 놓고 새 옷을 입는구나

한 철이 지나가고 새 계절 맞이하니

9월이 물드는 것을 그 누구가 막으랴

                              ... <물드는 9월>, 오정방​​

 

초복ㆍ중복ㆍ말복을 지나고, 입추와 처서도 지나고, 9월이다. 입추(立秋)에서 보름이면 처서(處暑)인데 그것도 지났으니 이제 계절로는 분명 가을이렸다. 아직 한 낮에는 그렇지 않지만, 최장의 열대야도 끝났다고 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아닌 척 하지만 자연이 슬며시 지조를 잃고 변절하는 것 같다. ​

 

9월이라고,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살갗이 선득거립니다

바람도 없는데, 지조 없는 기후입니다​

 

가을,

당신도 변해도 괜찮습니다

인생으로 말하면

후반부 내리막길이니, 쉬엄쉬엄

두리번거리며 가도 됩니다​

 

텃밭 잡초들에게 안부도 물어보고

동네 초입 이름 모를 정자나무에게 손 내밀어 아는 체하고

나 같은 늙은이 계절병에 걸리지 않게끔

마음도 짚어봐요

그러다 보면

변절이 배신이 아니라 배려가 된다고

하산길 여기저기가

가을 입구 햇볕 좋은 정오의 등처럼

따뜻합니다

                                       ... <가을 입구>, 성백군​​

 

 

가을의 그러한 변절을 우리는 이미 처서에서 알았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고 풀이하고 있는데 '처서'라는 이름에 이미 '자연의 변절'이란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처(處)라는 글자에는 ‘휴식하다’, ‘머무르다’, ‘돌아가다.’ 등의 뜻이 있으니 이 이름에 '더위가 쉬거나 머물거나 돌아간다', 혹은 '더위를 다른 곳으로 보내어 처리한다'는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찾아낸 선인들의 지혜가 다시 확인될 정도로 처서라는 분기점을 통해 계절은 이미 가을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때에 농촌에서는 나락이 크는 소리에 놀라 개가 짖는다고 하는데, 그만큼 뽀송뽀송한 공기 속에 가을 햇살을 받아 영그는 곡식들이 아마도 동물들의 식욕본능을 깨우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

 

이제 이 계절에 사람들도 더위에 지쳐 때로는 걸핏하면 감정이 앞서고, 흥분하고 싸우고 하는 데서 벗어날 때이다. 사상 최악, 최장이라는 불볕 가마솥더위가 아직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9월이 되니 9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할 때다. 9는 가장 큰 양수, 가장 높은 수이기에 예로부터 신성한 숫자이며 완전에 다가가기 전 가장 좋은 상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결실의 달 10월을 향해 마지막 박차를 걸어가는 달이고, 사업이나 인생이 이달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 풀어지는 달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9월은 우주의 시간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인 만큼 단순히 숫자의 의미를 넘어서서 시간의 변화를 바로 보고 삶에 관한 성찰을 해야 할 때다. 9월은 코스모스가 피는 때고, 코스모스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을을 알리는 꽃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도시의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이라며 그 증거로 코스모스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 <9월>, 오세영​

 

그러기에 제발 이제는 국민을 힘들게 하는 정치의 소용돌이도 좀 멈추고 정치인들도 좀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여 정치에서 시원한 바람이 일게 할 수는 없을까? 우리들, 잘 아는 어느 시인처럼 강가에 가서 흐르는 물을 보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라는 가르침을 가만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 <9월이 오면>, 안도현

 

 

날개는 지쳐도

하늘을 보면 다시 날고 싶습니다

생각을 품으면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다지면 용기가 생기지요​ ​

 

세상에 심어놓은 한 송이, 한 송이의 꿈

어느 들녘에서, 지금쯤

어떤 빛깔로 익어 가고 있을까요

가슴은 온통 하늘빛으로 고운데​

 

낮아지는 만큼 깊어지는 9월

한층 겸허한 모습으로

내 아름다운 삶이여! 훗날

알알이 탐스런 기쁨의 열매로 오십시오

                                    ... <9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그렇다. 이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계절인 것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