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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세월 속에서 아름답게 익어갑니다

아주 어려도 할미꽃은 할미꽃
[정운복의 아침시평 221]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리나무는 십 리가 떨어져 있어도 오리나무고

고향나무는 타향에 심겨 있어도 고향나무고

할미꽃은 아주 어려도 할미꽃이라고 불립니다.

 

옛날엔 할미꽃이 참 많았습니다.

밭둑이나 산소 주변에 쉽게 볼 수 있었던 꽃인데

요즘은 기후 변화 탓인지 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할미꽃은 나름대로 열심히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자라고 번성하는 꽃인데

자신이 할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면 아마도 서운할 것입니다.

어쩌면 꽃이 시골 할머니의 꼬부라진 허리처럼 휘어져 있기에 붙은 이름이겠지요.

 

부끄러움의 결과인지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태어나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살다가

홀씨를 날릴 때가 돼서야 잠시 허리를 펴는 할미꽃은 우리 인생을 닮았습니다.

 

 

할미꽃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동강할미꽃이 아닐까 합니다.

동강할미꽃은 생김새는 할미꽃을 닮았지만

보통 할미꽃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화사한 꽃잎은 벌리고 있거든요.

 

한약방에서는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마도 할미꽃의 홀씨가 흰 머리카락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것입니다.

할미꽃의 뿌리는 매우 강한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한약재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되는 약재지요.

 

할미꽃의 꽃말은 슬픔, 추억입니다.

거기에는 슬픈 전설이 숨어 있습니다.

옛날 세 손녀를 둔 할머니가 살았지요.

사랑으로 키운 손녀들을 모두 시집보내고 나서 늙어버린 할머니는 손녀를 찾아 나섭니다.

 

첫째는 부유했지만, 할머니를 집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야박한 둘째도 문전 박대하지요.

착한 셋째네 집을 방문하기 위하여 산을 넘다가 추위에 지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마중 나오던 셋째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고 하지요.

할머니 무덤에서 허리가 굽은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할미꽃이라고 불렀답니다.

 

할미는 할머니나 할멈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한자로는 고(姑)라고 씁니다.

파자하면 ‘여(女)’와 ‘고(古)’자가 나오는데

곧 여자가 오래되면 할머니가 되는 것이겠지요.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런데 노화되었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존경이 아닌 무시를 당하는 세상에 직면해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할미꽃이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내듯이

우리도 세월 속에서 아름답게 익어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