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대체로 검사는 상대방의 죄를 캐내려고 노력하고
피고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죄인을 자처하는 목사에게 무죄라고 주장하는 검사들이 그것이지요.
물론 기소 권고가 내려지긴 했지만, 세인들의 눈에는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습니다.
권력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사들은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권력이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
진실 규명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의 압력이나 정치적인 고려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신뢰와 정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더욱 공정하고 투명한 결정을 해야 할 사회 지도층이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게 다가옵니다.
사회적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비자는 나라가 망하는 47가지 사례를 열거했습니다.
"임금은 어리석은데 그 측근인 왕실의 친척이나 형제는 현명하고,
관리의 힘이 약하면 백성들은 오만해져 나라 안은 혼란스러워진다.
민심이 흔들리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그 나라는 마침내 망한다.
임금이 조그마한 술수로 법을 어긋나게 만들고,
사사로운 일로 공사(公事)를 그르치게 하며, 법률과 금령을 쉽게 바꾸고,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명령을 내려
백성들이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곧 법을 바로 세우고 정의를 실현하는 군주가 훌륭한 군주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며, 누구든지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법 앞에 권력을 빙자한 열외자가 없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뒤로 몇억 대를 받아 챙기며 몇십만 원 돈봉투를 단죄하는 세상은 옳지 않습니다.
돈봉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기 때문입니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란 말씀이 있지요.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다는 말씀이고
‘상량부정 하량왜(上梁不正 下梁歪)’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위쪽 마룻대가 바르지 못하면 아래쪽 들보도 비뚤어진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