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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의 어린이 교육서, 율곡의 《격몽요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1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조실록》 21권, 인조 7년(1629년) 10월 17일 기록에는 “황해 감사 이경용(李景容)이 《격몽요결(擊蒙要訣)》 수백 권을 인쇄하여 올렸는데, 임금이 나라 안팎에 퍼뜨리라고 명하였다. 《격몽요결》은 이이(李珥)가 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책은 책머리에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봉양하고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책을 지었다.”라고 밝히고 있지요. 이 책은 율곡(1536∼1584)이 42살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교재로 쓰기 위해 펴낸 것입니다.

 

특히 《격몽요결》은 박세무(朴世茂)가 쓴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초학자의 입문서로 많이 읽혀 왔습니다. 중국에서 나온 책인 《소학(小學)》과 달리 조선의 시각으로 조선의 정서와 학풍에 맞게 쓴 것이 큰 특징입니다. 이 《격몽요결》 가운데 목판본이나 활자본이 아닌 유일한 친필본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이 강릉 오죽헌에 가면 있습니다.

 

 

율곡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23살 때 별시에서 장원을 한 뒤 벼슬길에 올랐고, 호조좌랑, 예조좌랑, 우부승지를 거쳐 47살 때 이조판서를 지냈습니다. 특히 그는 9번이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지요. 율곡의 성리학 사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임진왜란 이전 “10만양병설”을 주장할 만큼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음은 물론 그가 죽은 뒤 온 나라 20여 개 서원에 위패가 모셔질 정도로 큰 인물이었지요. 저서로는 이 책 말고 《성학집요》, 《기자실기》, 《만언봉사》 따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