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랜만에 인사동에 지인을 만나러 나들이했다. 일찍 간 덕분에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달항아리를 한국채색화로 그린 그림을 보았다. 달항아리를 작가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아담한 전시장에는 달항아리뿐 아니라 꽃신과 청자와 분청 도자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바로 정영신 작가의 ‘미래를 향한 과거의 여정’ 개인전이다.
절제와 담백함으로 빚어내 순백의 빛깔과 둥근 조형미가 아름다운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다. 그야말로 조선백자를 대표하는 꾸밈없는 담백함이 자아내는 모습이야말로 조선시대를 대표하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여기 전시된 한국채색화 ‘달항아리’는 담백한 모양새에 홍매화와 백매화를 곁들여 훨씬 아름답게 묘사했다. 거기에 둥그렇게 뜬 달은 담백함을 넘어 풍요로움을 담고 있음이 아니던가?
거기에 또 하나의 달항아리, 이건 백자가 아니다. 짙푸른 바탕에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인용하여 순금 물감으로 금강산의 깊이를 표현한다. 금강산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달항아리를 그저 한국채색화로 그려내기만 하는 것은 창작의 의미를 더하는 일은 아닐 터다. 매화와 금강산을 더해 그만의 그림을 창조해 내고 있음이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꽃신이다. 새들이 쌍으로 앉아 있는 화려한 꽃신이 하늘을 난다. 어 그런데 정영신 작가의 설명을 빌리면 꽃신에 있는 꽃들이 그저 그린 것이 아니란다. 한땀 한땀 자수를 놓은 것이란 설명이다. 한지에 채색한 뒤 실크자수로 바느질한 것이라니 이 얼마나 정성을 담았을까?
이 꽃신 그림은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스위스 취리히 아트페어에서 전시해 호평받았다고 한다.
또한 전시된 그림 가운데는 ‘청자주병’과 ‘조선분청사기’ 그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을 보인다. 박물관에서 도자기 유물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청자 주병이 또 다른 비취색 청자로 뽐내고 있으며, 분청자기는 도자기에서 보는 상감기법의 느낌이 그대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한켠에는 ‘공존2’이란 화제의 그림이 나 좀 봐달라고 전시돼 있다. 지난 전시에서 ‘공존’이란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이를 좀 더 업그레이드한 그림을 그린 것이란다. 큰 주발에 담긴 화려한 꽃들 사이에 사람과 새 그리고 동물들이 뒤섞여 있다. 맨 위쪽에는 정의로운 인물 스파이더맨도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 뒤섞여 공존하는 모습을 작가는 꿈꾸고 있다. 그의 마음속을 우리에게 잔잔하게 내비치는 것이다.
정영신 작가는 “조선시대의 예술에 영감을 받아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에 재해석하여 한국적 미감을 잃지 않고 우리문화의 서정성을 회화로 표현하였다. 선조들의 소중한 유물, 특히 시간을 잊은 듯한 달항아리와 조선 도자기들은 독창성과 정체성이 분명한데 이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전통이 되도록 창의적으로 표현한 채색화”라고 지신을 그림을 설명한다.
인사동에 왔다가 짙푸른 달항아리에 금니로 금강전도를 그린 그림에 끌려 나도 모르게 전시장에 들어왔다는 마포의 구성희(47) 씨는 “달항아리를 도자기가 아닌 한국채색화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더구나 한지에 자수를 놓은 꽃신 그림은 작가의 땀이 물씬 묻어나는 기막힌 그림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전통에 이렇게 법고창신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창작하는 예술가에게 큰 손뼉을 쳐준다.’라고 말했다.
인사동에는 전시장도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전시장에는 서양화나 서양기법의 조각작품들 전시가 대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이런 신선한 한국채색화 전시를 보물찾기하듯 찾은 느낌으로 본 가을하늘은 참으로 푸른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