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이 창단 79년 제93회 정기연주회를 맞이하여 지난 12월 17일 영등포아트홀에서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 원영석 교수의 지휘로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성탄절을 맞이하기 한 주 전에 진행된 이번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은 많은 관객이 찾아와 500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필자는 교회음악을 하는 아마추어(여기에서 이들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 하지 않은 자들을 뜻함) 합창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평소 음악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던 외국인 유학생 3명, 한국 학생 1명과 동행했다.
교회음악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모차르트의 ‘레퀴엠(D단조, K. 626)’을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합창한다는 프로그램 안내에 과연 얼마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성악 전공자들도 오랜 시간 수련을 해도 어려운 대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문이 무색할 만큼 훌륭히 해내었고 동행한 학생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오늘 레퀴엠에서 8곡을 불렀는데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기도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필자 또한 전문 국악 연주자들과 함께 찬양국악단 사랑국악앙상블을 17년째 단장으로 이끌고 있다.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를 하면 연주의 질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서 지금까지 ‘전공자’에 한해 모집공고를 내었다. 그러나 이날 내 편견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왜 이들은 이토록 열정적으로 79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속하며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는가? 이날 신삼호 단장은 “역대 지휘자들 비롯하여 전 단원들이 봉사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원영석 지휘자를 필두로 음악 전공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아마추어들과 동일하게 봉사로 임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은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박태준 박사에 의해 60명의 단원으로 시작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12월 첫 정기연주회 때 헨델의 오라토리아 메시아(HANDEL의 Oratorio MESSIAH)를 초연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의 교회들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이 곡을 부르는 것이 중요한 문화가 되었다. 또한, 첫 정기연주회 이후로 헨델을 비롯한 모차르트, 바흐 등의 오라토리오 합창곡들을 국내 초연을 하며 다양한 공연 종목을 선보였다.
오라토리오(Oratorio)는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극음악으로 교회 기도실을 뜻하는 라틴어 오라토리옴(Oratorium)에서 유래하였다. 교회에서 마지막 찬미 때 부르는 합창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극음악의 형태를 띠어 한국어로 ‘성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교적인 내용이 아니더라고 관현악이 동반된 대형 합창곡을 오라토리오 범주에 속하기도 한다. 극음악임에도 오페라처럼 연기를 하거나 그에 맞는 의상과 분장을 하지 않고 노래와 음악으로만 가사를 풀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은 교회음악 말고도 국악, 케이팝(K-POP)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여성중창과 남성중창으로 선보였다. 또 한국 전통 민요 창법의 새타령과 품바타령을 재즈와 팝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적 합창곡으로 국악기와 함께 신명 나게 흥을 돋웠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를 바탕으로 여성중창단이 부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아름다운 음색으로 청중들이 넋을 놓게 했다. 얼마 전 계엄령으로 간담이 서늘해지고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있던 필자는 이 음악으로 오랜만에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평균 중년의 남성중창단들이 케이팝 선율에 맞춰 랩을 하며 부르는 것도 놀라운 도전이었지만 춤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유도한 것 역시 신의 한 수였다. 이 밖에 어린이 합창단 홀리뉴젠이 함께 하며 여러 가지 공연을 선보인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의 무대를 보며 앞으로 교회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었다.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은 창단 때부터 수준 높은 교회음악을 초연하며 한국 대중들에게 교회음악의 새로운 면을 선사했다. 그러나 교회음악은 점차 보수적인 성향을 띄게 되면서 고정적인 공연 종목 이외의 곡들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졌다. 필자 또한 항상 곡을 고를 때마다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선보이는 것은 큰 부담을 가진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렇게 실험적인 도전들을 이어가는 것일까?
오늘 이들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그들은 대중에게 향한 ‘사랑’을 전하고자 하였음을 진하게 느꼈다. 그들의 무대에서는 자신을 뽐내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무대로 경쟁하는 음악이 아닌 진실로 대중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여러 가지 새로운 교회음악의 형태를 선보이며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긴장된 듯 떨렸으나 평안하였고 따뜻하였다. 공연을 위해 관객석을 조명을 껐지만 마치 누군가가 빛을 비추고 있는 듯하였다.
그들의 음악은 첫 시작 찬송가부터 마지막 성탄곡까지 ‘사랑’을 말한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것같이 두렵고 아플지라도 그들이 연주하는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과 축복 같은 음악을 듣는다면 앞으로의 삶에는 희망이 넘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선한 동기로 노래를 불렀기에 그 따스함이 전해진 것이다. 또한, 점차 고정된 음악의 형태를 쉽게 벗지 못하는 교회음악에 날 선 외침을 던진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다는 기쁜 소식은 그 소식을 듣고 모여서 고인 채로 썩는 물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모이고 흘러 그 시대의 기쁜 소식을 듣는 자들에게 사랑의 향기를 전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음악의 형태는 시대에 맞춰 변화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대상의 눈높이에 맞춰 사랑을 전해야 하는 음악적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성탄절이 며칠이 지난 오늘 더욱 그들의 음악이 생각이 나는 까닭일 것이다. 앞으로의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의 더욱 새로운 음악 활동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