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앗, 무대가 열리자,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것은 물론 여백이 미가 인상적인 무대가 열린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무용수의 독무가 나의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조선시대의 미인이 현대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겸 단장 김종덕)은 신작 <미인>을 4월 3일(목)부터 6일(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그 직전인 2일 낮 3시부터 60분 동안 열린 기자시연회에서 여성 무용수들로만 펼치는 압도적인 한국춤의 향연 속으로 나는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해 온 국립무용단이 2025년 공개하는 첫 번째 신작이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국내 각 분야 예술계를 대표하는 창작진과 함께 한국춤에 내재한 아름다움의 값어치를 새롭게 조명한다.”라고 <미인> 공연의 의미를 밝혔다.
특히 공연 가운데 “장삼의 유려한 곡선미와 나비춤의 고요한 울림을 조화롭게 결합해 새롭게 구성했디.”라는 ‘승무&나비춤’을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나는 그동안 전통 ‘승무’를 자주 보았는데 특히 지난해 12월 열린 <김연정의 승무와 태평춤 이야기>에서 진한 그러면서 그야말로 전통 승무춤을 감상한 적이 있다. ‘승무’는 그야말로 우리춤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정중동의 진가가 잘 살아있는 춤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미인> 공연 가운데 ‘승무’는 그런 승무를 좀 더 빠르게 그리고 화려하게 업그레이드하여 이 시대에 어울리도록 함과 동시에 젊은 세대에 공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와는 좀 결이 다른 ‘칼춤’을 보자. ‘칼춤’은 신윤복의 ‘쌍검대무’와 《무예도보통지》 속 ‘쌍검술’을 창작동기로 출발했다고 한다. 360도 회전하며 화려한 소리를 내는 단검과 길고 화려한 장검을 혼합해 더욱 힘 있고 균형미가 강조된 춤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동안 국가무형유산 ‘진주검무’는 아기자기한 맛과 화려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는데, <미인>의 ‘검무’는 여성들의 칼춤이지만, 좀 더 힘 있고, 절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진도북춤을 바탕으로 북소리의 진동과 울림을 대지의 어머니, 그 아름다운 에너지와 이미지로 승화시킨 장면이 돋보이는 ‘북춤’은 북의 흥겨움과 신명, 그리고 아름다운 춤사위가 어우러져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또 유연하고 조화롭지만, 강한 생명력의 멋을 한껏 펼쳐 남성들이 추는 북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여성들의 민속놀이 <놋다리밞기>에서 창작동기를 찾은 ‘놋다리밟기’는 고려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간 노국공주가 놋다리밟기로 개울을 건너게 했다는 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보름 달빛 아래 여성들의 공동체적 에너지가 짙게 깔린 분위기 속에서 춤꾼들이 길게 늘어선 놋다리를 만들고, 그 놋다리를 하나하나 건너면서 과연 춤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밖에 <미인>은 부채춤, 베가르기, 산조&살풀이, 탈춤, 신미인도 등의 공연으로 숨 가쁘게 이어간다. 60분 공연 시간이 깜짝할 새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립무용단의 <미인>은 전통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기술을 접목, 국내뿐만 아니라 나라 밖에서도 주목할 만한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공연을 통해 국립무용단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고 한국춤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협업한 만큼 무용을 넘어 하나의 종합예술로서도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춤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통문화가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한국적인 미(美)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무대와 음악, 의상은 외국 관객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부터 연극ㆍ영화ㆍ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한 양정웅 연출, 국내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안무가 정보경, K-패션의 아이콘이 된 서영희, 드라마 ‘정년이’ 음악을 맡았던 장영규, 최정상 케이팝 예술가의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주목받은 무대디자이너 신호승 등 ‘어벤져스’ 창작진이라 할 만한 제작진이 하나 되어 공연을 꾸렸다.


특히 무대디자인은 최정상 케이팝 예술가의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주목받은 창작예술가 신호승이 맡았다. 지름 6.5m의 대형 풍선을 활용해 음과 양의 에너지를 형상화하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26m의 대형 천과 족자 형태의 LED 오브제 등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무대를 구현해 관객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뿜는다.
국립무용단의 <미인>은 전통춤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과 기술을 접목하여,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고 한국춤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하나 되어 <미인>을 꾸리는 만큼 무용을 넘어 하나의 종합예술로서 우뚝 서서 나라 안팎에서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아쉽게도 <미인>의 이번 공연은 전회차 조기 매진을 기록했다. 공연 개막 3주 전 시점에 객석 점유율 99%를 기록하며 전회차 만석을 기록한 것은, 한국무용 공연에서 매우 이례적 결과라고 한다. 국립무용단은 전석 매진 이후에도 끊임없는 예매 문의와 공연 회차 증회 요청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 2일 기자시연회 때 일반관객을 일부 입장시키기도 했지만, 추후 별도의 공연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