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옷깃을 절로 여미게 되는 요즘, 들려오는 기별이 그리 따뜻하지 않아 마음마저 움츠러드는 듯합니다. 요즘 몬값(물가)이 너무 올라 해끝 모임 집에서 조촐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어제도 나눴습니다. 바깥에서 돈을 쓰지 않고 집안에 머문다는 뜻의 영어 ‘코쿠닝(Cocooning)’이라는 말도 여러 해 앞부터 들리더군요. 팍팍한 살림살이 탓이라지만, 저는 이 됨새(상황)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춥고 어수선한 바깥 누리가 아닌, 가장 아늑한 곳에서 서로의 따뜻함(온기)에 기대는 때새(시간)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바로 ‘다붓하다’입니다.
이 말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또는 ‘조용하고 호젓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거리가 가까운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리느낌(분위기)가 호젓하고 아늑할 때 쓰기 참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의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와 ‘붓’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말의 말밑(어원) 풀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말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모두(다)’와 ‘붙다(붓)’의 느낌이 더해져 ‘빈틈없이 가깝게 모여 있는 모양’을 그려낸 말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오붓하다’가 홀가분하고 살가운 느낌이라면, ‘다붓하다’는 서로의 몸이 닿을 듯이 다소곳하고 따뜻함을 더 깊이 품고 있다고 할까요?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참 아름답게 쓰였습니다. 김남규 님의 시조 <사당역 4번 출구>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손 내민 검붉은 사연 치더듬던 그 자리 / 봄 하늘 다붓하게 귀띔하듯 햇살 내리고 / 알싸한 냉이뿌리 내음 눈물빛이 고여 있다
봄 햇살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다붓하게’ 귀띔한다는 대목, 참으로 맛깔스럽지 않은가요? 멀리서 비추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귓속말 나누듯 아주 가까이 내려앉은 햇살의 따스함이 ‘다붓하다’라는 말 하나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이 고운 말을 우리 나날살이에서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코쿠닝족 증가"라는 딱딱한 기별을 갈음해, "추운 겨울, 집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다붓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었습니다"라고 바꿔보면 어떨까요? 살림살이의 어려움이 주는 씁쓸함이 아닌,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마음이 먼저 와닿을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도 이 말을 담아보세요. 오랜만에 만난 동무들에게 "우리 좁혀 앉자"라는 흔한 말보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리 좀 다붓하게 앉아볼까?"라고 말해보는 겁니다. 그 말 속에 담긴 살가움에 서먹했던 자리느낌(분위기)가 금세 따스해질 것입니다.
누리(세상)이 춥고 팍팍할수록 우리는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비싼 밥집이나 빛나고 아름다운 잔치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다붓하게 앉아보세요. 서로의 몸이 닿는 그 가까운 거리만큼, 얼어붙은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릴 테니까요. 여러분의 오늘이 그 어느 때보다 ‘다붓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