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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볼수록 재미있는 우리 그림 이야기

《왜 유명한 거야, 이 그림? 한국미술》, 이유리, 우리학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명한 건 알겠는데, 왜 유명한 거야?”

우리 그림 가운데는 좋은 작품이 참 많다. 다만 서양 화가들의 그림과 견주어 접할 기회가 다소 부족했기에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학교에서도 서양화 중심으로 배우고, 한국화보다 서양화를 다루는 책들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우리 그림에도 서양화 못지않은 이야깃거리와 의미가 물씬 배어있지만, 막상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알면 알수록 조금 더 새롭게 보이는 것이 그림이다. 이유리가 쓴 이 책, 《왜 유명한 거야, 이 그림? 한국미술편》은 무심코 지나쳤던 명작들이 품고 있는 뜻을 하나하나 깨우쳐주는 책이다.

 

 

좋은 작가 뒤에는 좋은 후견인이 있었다. 안견과 정선이 대표적이다. 안견은 세종대왕의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이, 정선은 ‘이병연’이라는 인물이 든든한 후원자였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말 그대로 ‘꿈속에서 노닐었던 복숭아밭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안평대군의 꿈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안평대군은 예술을 사랑하는 당대 으뜸 수집가였다. 수집품이 무려 222점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36점이 안견의 작품일 정도로 안견의 실력을 아꼈다. 안견은 낳고 죽은 해를 모를 만큼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지만, 안평대군은 안견의 뛰어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신숙주는 안견에 대해 “안견은 옛 그림을 많이 보아 그 깨달음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삼고, 여러 대가의 좋은 점을 모아 자신의 그림 속에서 알맞게 조절했다. 그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사람을 얻기 어렵다.”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안평대군은 1447년 음력 4월 20일 밤, 무릉도원 꿈을 꾼 뒤 곧장 안견에게 연락했다. 안평대군은 안견이 그린 무릉도원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신숙주, 성삼문, 김종서, 정인지, 박팽년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 21명에게 그림을 찬미하는 글을 받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누리소통망(SNS)에 작품을 올린 뒤 감상평을 댓글로 받은 셈이다. 안평대군 본인도 이 그림이 탄생한 배경을 기록했고, 21명이 쓴 21편에 자신의 글 2편을 더한 23편을 그림 옆에 붙였다. 그래서 실제 그림의 가로 길이는 1미터 남짓이지만, 글까지 합치면 무려 20미터가 넘는 대작이 되었다.

 

실제 경치를 그리는 진경산수화로 이름난 겸재 정선에게도 절친한 벗이자 둘도 없는 후원자인 ‘이병연’이 있었다. 이병연은 정선보다 다섯 살 많았지만, 어릴 적부터 동문수학한 사이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 있었다. 이병연은 정선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본인도 정선의 그림을 많이 수집하고, 자신이 참여하는 모임에 정선을 초대해서 선비들에게 정선을 소개하고 그림을 사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정선이 당대 으뜸 화공으로 이름을 날린 데는 이병연의 후원과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겸재 정선의 역작인 <인왕제색도> 역시 이병연과의 우정이 없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그림이다. ‘비가 그친 뒤 인왕산 모습’을 그린 인왕제색도는 마침 인왕산 근처에 살던 두 사람이 자주 보던 풍경이었다.

 

(P.50)

그 바위산 아래로 나무에 가려 살짝 지붕만 드러난 집 보이지? 이병연의 집과 정선의 집이란다. 이 그림은 정선이 일흔여섯 살 때인 1751년 5월에 그렸어. 이때 여든한 살의 이병연은 병석에 누워 있었지. 정선은 비구름이 걷히듯 이병연이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어.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이병연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 더 건강해지기를 기원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선이 이 그림을 그린 지 나흘 만에 이병연은 세상을 떠나고 말아. 정선은 <인왕제색도>를 통해 60년 동안 변치 않은 우정을 나눠 준 이병연에 대한 감사와 작별 인사를 한 듯해.

 

자신의 재능을 귀히 여기고 평생 아껴준 벗에게 그림으로 보답했던 정선. 예술은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쪼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알 바깥에서 쪼아야 병아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뜻)처럼, 진정한 값어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인생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살아있는 관계는 정말 드물고 귀하다.

 

책에는 안견과 정선 말고도 이중섭, 천경자, 반가사유상 등 유물과 현대 작가들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한 번쯤 미술책이나 전시에서 봤지만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림이라면, 이 책에서 꽤 많은 의문이 해소될 듯하다. 한국미술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돋우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