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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32. 조선시대 임금의 남자 내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경복궁에는 경회루 남문 서쪽에, 창덕궁에는 선정문(宣政門) 안 동쪽에 있었던 내반원(內班院)은 내시(內侍)들의 집무실이었습니다. 그 내시들은 사극에서 구부정한 어깨에 어정쩡한 걸음걸이 그리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인물로 많이 묘사됩니다.
 

하지만, 내시는 알고 보면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지요. 물론 궁궐 안 청소 같은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내시도 있었지만 정치까지도 깊숙이 끼어들었던 내시들도 있었습니다. 또 궁중 안의 음식을 두루 감독하는 대내감선,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전명, 궁중의 문을 지키는 수문 등도 내시의 업무였지요. 그뿐만 아니라 궁중 제사, 왕실의 재산 관리, 궁궐 안 여러 공사 감독, 궁녀의 감독 등 내시들이 맡아서 하는 일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이 가운데 수라상에 오르는 음식을 감독하는 상선이 내시부의 으뜸 벼슬이었지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내시는 조선시대의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140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시가 되었을까요? 어릴 적부터 사내구실을 못한 아이들이거나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내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내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내시는 신분 상승을 할 좋은 기회였고, 내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면 그 대가로 식구들은 재물을 받았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이었던 임금의 남자 내시. 고려시대 주자학을 들여온 안향, 조선시대 때는 연산군한테 바른 소리를 하다가 죽임을 당한 김처선,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행차를 따라 임금을 지켜 냈던 김계한, 연산군 때 임금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김자원 등이 내시 중 역사적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