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인민들이 흙을 파서 먹는 자가 무릇 30명이나 되었으며, 장연현에서는 두 사람이 흙을 파서 먹다가 흙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위는 세종실록 26년(1444) 4월 26일 기록입니다. 얼마나 먹거리가 없으면 흙을 먹었을까요? 조선시대 일부 사대부가는 호화롭게 음식을 장만하여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백성은 이렇게 가뭄과 큰비로 흉년이 들면 먹을 것이 없어 흙까지 먹을 정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백성의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가장이 먹고살 것이 없자 자살하거나 식구를 버리고 도망간 것은 물론 자식을 팔아 끼니를 이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또 먹거리 대신 목화씨를 먹고 죽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심지어 사람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기도 있습니다. 영조실록에 보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기관인 경상도 진휼장(賑恤場)에는 굶은 백성이 17만 9천8백 65명, 떠도는 거지가 1만 1천6백 85명, 사망자가 1천3백 26명이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굶는 백성의 숫자가 많았습니다.
이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구황식물이라고 했지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구황식물은 무려 851종이고, 농가에서 평소에 먹는 것만도 304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소나무껍질, 솔잎, 솔방울, 도라지, 칡, 도토리, 달래 등 나물 종류, 느릅나무 잎, 개암 등은 인기 먹거리 품목이었지요. 지금은 먹거리가 흔해졌지만 그래도 이웃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