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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모씨의 항아리’ 이야기를 이 난에 소개한 이유는 그가 자기 집에 항아리를 두고도 그것이 귀한 보물임을 모르고 지내 왔듯이, 한국 전통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악이라는 항아리를 들고 전문 감정가들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제일 먼저 알렌․호바네스(Alan Hovhaness)를 만났는데, 그가 말한 논평문 속에 ‘아악’ ‘향악’ ‘거문고’ ‘가곡의 대여음’과 ‘처용무’ 등의 낯선 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속풀이를 하는 중이다. ‘아악’ ‘향악’ ‘거문고’ 등은 이미 간단하게 풀이하였고 ‘가곡’과 ‘처용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리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풀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가곡’은 홍난파 이후의 신가곡이 아니다. 조선조 전기부터 문인이나 선비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오던 전통 가곡을 말한다. 가곡은 5장 형식이다. 시조시 초장을 가곡에서는 1장과 2장으로 구분하고, 시조시 중장 전체를 3장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종장을 4장과 5장으로 나누는데, 가곡의 4장은 시조시 종장의 첫 3음절을 노래한다. 그러므로 ‘동창이 밝았느냐’를 예로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대여음(악기들의 전주)
1장 “동창이 밝았느냐”
2장 “노고지리 우지진다”
3장 “소치는 아희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중여음(악기들의 간주)
4장 “재넘어”
5장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남창 가곡은 26곡, 여창가곡은 달리 15곡이 있는데 이들을 노래 부를 때, 처음은 매우 느린 템포로 시작하지만 점차 빠르게 진행된다. 장단은 16박 또는 10박을 장단주기로 삼는다. 선율은 대체로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다른 장르의 노래와 차이점이 있다면 반드시 관현악기들의 반주가 뒤따르는 성악이라는 점이다.
빠르지 않은 장단은 격조와 여유가 있고 부드러운 곡선이 거문고를 위시한 관․현악기들과 조화를 이루면 정제된 음악미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래이다. 이 가곡에서 파생되어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한 것이 바로 시조창이다.
‘처용무’는 처용설화에서 기원 된 춤으로 청색, 적색, 황색, 흑색, 백색의 각기 다른 옷을 입은 5인의 무동이 처용의 탈을 쓰고 긴 한삼을 뿌리며 추는 춤이다. 방향을 달리하며 돌기도 하고, 중앙의 황색과 대무도 하면서 추는 매우 화려하면서도 활달한 춤이다. 춤을 추다가 처용가나 봉황음과 같은 노래도 부르는 점이 특색이다. 이 처용무도 현재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종목이다.
두 번째의 감정가를 만나보기로 하겠다. 한국에 와서 국악기를 직접 배우기도 하고 전통기법에 의한 새국악 <무궁화(無窮花)>를 작곡한 바 있는 미국의 작곡가 루 해리슨(Lou Harrison)이라는 감정가이다.
“아악을 처음 들었을 때, 탁월한 음의 구성과 놀라운 기교를 발견하였다. 서양의 음악적 실험이나 조사의 개념이 동양의 방향을 애호하지 않는 한, 음악적인 만족은 서양에서가 아니라,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에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위 논평에 나오는 아악 역시 궁정음악, 또는 정악의 개념으로 쓰인 용어이다. 앞으로의 음악적 실험은 동양, 그 중심에 한국음악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그는 1960년대 초,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려고 내한했던 음악가였는데, 국립국악원에서 국악기, 특히 합주음악의 주선율을 이끌고 있는 피리의 중요성을 알고 김태섭 선생에게 정악피리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 당시 국립국악원 연구원으로 있던 필자는 선생의 조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번은 선생께서 장기간 공무출장 중이어서 필자가 대신하여 지도를 하게 되었는데, 필자는 그가 외국인이고 하여 더욱 쉽게 악보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정간보를 5선 악보로 밤새도록 바꿔 그린 적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하면서 악보를 주었고 레슨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의외였다. 전통 기보방법인 정간보는 어려울 것이라는, 특히 외국인에게는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나의 판단은 여지없이 오판이었다.
나의 이 특별 배려와는 달리 그의 반응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으면서 아니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고마워하기는 커녕, 왜 그런 무모한 일을 했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한국의 전통음악은 한국의 전통적인 기보법으로 배우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었다.
5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그때의 그의 의아해하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 다. 미국으로 되돌아간 그는 국립국악원의 위촉곡으로 “새국악 무궁화” 라는 곡을 보내 왔고 국립국악원 젊은 연주원들이 그 곡을 연주하고 녹음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정간악보로 기보되어 있어서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