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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 최창남, 타고난 목과 현란한 기교의 경기소리 명창

   

 

 

 

지금 국악속풀이는 한국전통음악이라는 항아리를 들고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을 만나는 중이다. 지난주 <46>에서는 조나단 컨디트(Jonathan Condit)박사의 평가로 “한국음악은 자연에 좀 더 가깝고, 서양음악은 더욱 인공적인 것 같다.”는 논평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음악으로 수제천을 들고 있기에 이를 소개하였다. 아악과 민속악의 차이뿐 아니라, 국악과 서양음악의 차이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고 있어서 참고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수제천이란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음향 자체도 매우 인상적이고 위엄 있으며 강렬하지만 진미를 알려면 여러 번 들어야 한다. 그 음악에 내재하여 있는 갖가지 음악적 요소도 특징적이지만, 일정치 않은 불규칙 장단 속에서도 많은 연주자가 하나같이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모습은 마치 물이 흐르고 바람에 구름이 움직이듯 자연의 형상 그대로라는 느낌이다. 잠시 분위기를 바꾸어 이번 주 국악속풀이 <47>에서는 최창남의 공연 관련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연일시는 3월11(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의 예능 보유자, 최창남 명창이 소리인생 60년을 기념하여 산타령을 포함한 경서도 소리판을 펼친다고 해서 장안의 화제다. 과학 발달로 인간의 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고는 하지만, 질병이나 재해, 또는 교통사고 등으로 60을 넘기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거늘, 60년을 한결같이 소리를 하며 살아온 최창남의 외길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보람있는 축복의 길이었음을 알게 한다.

그가 이처럼 소리인생, 그것도 경서도소리로 살아온 배경은 오직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끼와 선천적으로 높고 맑은 목을 타고났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의 소리인생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해방 직전 황해도 연백군에 있는 해남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해안가에 살고 있던 어린 소년은 학교 가는 것을 잊고, 고기잡이 어부들 속에 끼어 ‘배치기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때마침 그 곳을 지나치던 일본인 담임교사(國本)에게 들켰고 학교에 끌려가 종아리가 터지도록 맞았다고 한다. 명분은 학교를 결석했다는 이유이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식 노래가 아니라, 어부들이 즐겨 부르는 한국의 전통소리를 함께 불렀기 때문이다. 웬만한 소년 같으면 선생의 눈이 무서워 소리판에 얼씬도 하지 않으련만 최창남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에도 번번이 소리판에 끼어 자신만의 끼를 발산하곤 했던 것이다. 선천적으로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6·25전쟁 후에는, 남하해서 황해도 출신의 명창 민천식과 신경문에게 서도소리를 배웠고, 이은관을 쫓아다니며 그의 전매특허처럼 알려진 배뱅이굿도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 이은관 명인은 경기소리를 제대로 배울 것을 권하면서 벽파 이창배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최창남의 소리를 들어본 벽파 선생은 “청이 좋고 재주가 많은 청년을 만났다.”고 만족해하면서 그에게 시조와 가사와 같은 정가를 비롯하여 경·서도의 민요, 12좌창, 선소리 산타령 등을 전수해 주었고, 수료 후에는 곧바로 보조 강사의 임무를 부여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50~60대 경서도 명창들로 최창남 앞에 소리를 다듬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소리도 좋아하지만 선천적으로 대단한 목구성을 타고 난 사람이다. 고음은 여창보다도 더 높게 올라갈 정도이고 크고 작은, 강하고 약한 소리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특히 떨고, 밀고, 흘리고, 돌리고 꺾어내리는 현란한 목구성의 기교는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그의 영역으로 알려졌다.

전국을 돌며 수없이 많은 공연을 통해서 일반 애호가들과 만났고, TV나 라디오 방송 등 방송매체를 통해서 경기민요의 멋이나 아름다움을 널리 보급, 확산에 이바지한 그의 공로는 높이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하겠다.

그는 타고난 목과 현란한 기교로 경기소리의 가치를 높여 온 명창이다. 언제 들어도 시원한 그의 소리는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우울한 소식이 가득 찬 세상에서는 그의 멋진 소리 한 곡조가 시름을 날려 보내는 청량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번 그의 60주년 소리인생 기념공연에는 이은관, 이은주와 같은 당대 최고령의 명창도 함께 무대에 선다고 한다. 그리고 한진자 외에 그가 아끼고 키워 온 크고 작은 제자들이 나와 선생의 ‘60년’ 기념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고 한다. 정말 기대가 크다.

앞으로 더더욱 선생의 강건을 바라며 최창남 명창의 소리를 잊고 못하고 있는 많은 팬에게 귀한 선물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